윗빠사나 명상의 강의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2018년, 저는 10일 동안 진행되는 위빠사나 명상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앉아서 명상하는 일정은 결코 쉬운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새벽부터 오후까지는 수행이 이어졌고, 저녁에는 강의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이 되었지만, 그때 들었던 내용 가운데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가르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후 제 회복의 과정에 깊은 도움을 주었고, 몸의 감각과 감정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위빠사나 명상에서는 감정이 생기기 이전 단계에서 이미 몸의 감각이 먼저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감정이 분노나 두려움 같은 분명한 형태로 굳어버리면, 그 이후에는 그것을 조절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감정이 형성되기 전, 미묘한 몸의 감각 수준에서 그것을 알아차리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가르칩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몸 기반 심리치료와 신경과학을 접하면서, 이 통찰이 현대 심리학의 여러 접근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0일 과정에서는 먼저 코 밑에서 느껴지는 들숨과 날숨의 감각에 집중하는 ‘아나빠나’ 훈련을 합니다. 그런 다음 앉은 자세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몸을 스캔하며 감각을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나아갑니다.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감정이 폭발적으로 형성되기 전 단계에서 몸의 신호를 인식하고 반응의 고리를 느슨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루 종일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생각은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기억과 상상, 판단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질 때마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고, 그 다음에 몸의 감각으로 복귀하라고 안내합니다.
처음에는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몸 안에 이렇게 많은 미세한 감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훗날 저는 이러한 방식이 몸 중심 심리치료에서 사용되는 접근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천 년 전에 전해진 수행법이 오늘날의 치료적 기법과 공명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영적 전통과, 현대 사회에서 우울과 불안, 공황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개발된 심리치료가 비슷한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몸’이라는 존재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지혜와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매일의 삶 속에서 만나는 상황과 말, 관계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다양한 신호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 신호에 둔감하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무시한 채 살아갑니다. 만약 우리가 몸의 감각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돌아볼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건강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욕심이나 허황된 기대 때문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한 채 무리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지는 않은지,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타인과의 비교로 인해 불필요한 수치심을 느끼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사고 말과 행동을 과하게 쏟아내고 있지는 않은지도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어쩌면 그 답은 머리보다 먼저 몸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 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더욱 절실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