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민이 엄마예요.

(학부모 해방일지)

by 춘희

2017.3.2.

하나뿐인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

딸에게 많은 친구들이 생기는 날이자 나에게도 그들이 생기는 날이다. 딸 친구 엄마.

그렇다. 드디어 학부모 반열에 올랐다.


등하교를 도와주는 학기 초.

누가 봐도 mpti E 성향이 확실해 보이는 한 엄마가 다가온다.

“지민이 어머니시죠??

반가워요 저 시연이 엄마예요~”

“아 네.. 반갑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입학하게 된 학교, 쭈뼛뿌뼛 눈치 싸움을 하던 차에 정말 고마운 존재다. 성격도 좋아 보인다. 그 성격 좋아 보이는 엄마는 여기저기 인사를 더 하고 다니는 것 같더니

금세 단톡방을 만들고 나를 초대한다

‘뭐 이런 모임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잘 됐네’

사람들 북적이는 거, 번잡스러운 거 딱 질색인 집순이인 나지만 그런 모임 하나쯤은

아이를 위해 필요하단다.

그래, 난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엄마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주말이면 아이들 데리고 여기저기 체험학습도 다니며 벌써 20년 지기 친구 못지않은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다.

톡은 하루 종일 울려댔고 집에만 있어도 그들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다 알게 해 주었다. '누가 누구랑 싸웠대 ㅇㅇ네 집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더라' 선생님 얘기, 잘 모르는 엄마들 얘기까지.

정말 절친들이 생긴 것 같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에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기대되고 그들의 존재가

참으로 든든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토요일. 키즈카페를 시작으로 다 같이 감자탕 집엘 간다. 헤어지기 아쉽다며 아우성인 아이들에 못 이겨 공원에서 또 3시간을 보낸다.

계속되는 행군에 점점 지쳐간다.

지친 몸뚱이로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까 그들 중

한 엄마의 전화벨이 울린다.

그렇게 통화는 다시 1시간.

이 날의 만남을 평가(?)하는 시간이 계속된다.


통화가 끝난 후 난장판이 된 집안 꼴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숙제 안 하냐며 또 아이만 잡고 만다.

그다음 주 주말도 계속되는 레퍼토리.


아이의 공부방법, 학원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교육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세상 다정했던 민준 엄마는

어딘가에서 애를 너무 잡는다는 둥 저렇게 시키니 아이가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겠냐는 둥.

사람 뒤통수를 마구 쳐댄다.

저 여편네를 그냥 죽여 말어?!


아이들 하교가 조금 지난 시간. 전화가 온다.

“아니 지민 엄마, 지민이가 시연이랑 같이

팀 프로젝트하기로 해놓고선 민지랑 하겠다고 가버렸다네?우리 시연이가 속상해해서 말이야”


"아 그러셨어요 죄송해요. 지민이랑 얘기해볼게요."

전화를 끊은 나는 다짜고짜 지민이부터 다그친다.

아이는 억울하다는 표정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연이 엄마에게 그런 전화가 오게 하면

안 되는 것. 그뿐이었다.


단지 나와 나를 대변할 것만 같은 나의 아이가

타인에게 이상적으로 비춰지는데 에만 몰두했다.




아이를 위해서 뭐든지 하겠다던 엄마는

그렇게 '나의 아이만 빼놓고' 뭐든지 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고 관계에 지쳐가고 있었다.


누군가 아이 친구 엄마는 딱 '사돈 대하듯이' 가 맞단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내가 선택한 나와 결이 같은 친구가 아닐 뿐,

아이 때문에 이어진 인연이기에 그 선을 지키면 되는 거다.

인간적인 배려와 침범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그것.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난 다시 지민이만의 엄마로 돌아온다.

내 친구를 만드느라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못하고 마음을 공감해주지 못한 미안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요즘은 잠들기 전 아이가 이름 붙인 '도란도란 시간'을 자주 갖곤 한다.

좋아하는 남자 친구 이야기도 이 시간에만 들을 수 있다.

점점 아이 티를 벗어가는 딸아이가 벌써 그리워져

더 꼬옥 안아본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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