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 날 같았으면 "네가 알아서 한다고? 알았어, 이제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말고 네가 다 알아서 해봐!"라고 화를 냈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와 마주 앉아 있던 식탁에서 일어나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슬퍼졌다. 눈물이 났다.
자기 말대로 알아서 잘하던 아이였지만 모든 면에서 많이 독립적인(말이 독립적이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둘째와 달리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높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입에서 마치 내가 하는 말이 귀찮다는 듯이 내뱉은 말에 내 마음에 큰 상처가 났구나 싶었다.
그 후 며칠을 퇴근 후 집에 오면 밥만 차려주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인증도 있고, 책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 보면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남편과 저녁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며칠 째 그러고 있는 내가 걱정된 남편이
"어디 드라이브 갈래? 가고 싶은 데 없어?"라고 하는 말에 또 눈물이 났다. 며칠 전 사건으로 내 눈치를 살피며 학원 갈 채비를 하던 아이도, 좋은 마음으로 아내를 위해 말을 꺼낸 남편도 나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했겠지만 사실 그 순간 가장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이게 뭐지. 이건 그냥 단순히 아이에 대한 서운함으로 인한 눈물이 아닌데.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고?초등학교 때 별명이 건드리면 운다고 수도꼭지이긴 했지만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며 엄마가 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작은 혹은 많이 큰 생채기들에 어느 정도 단단해진 나였다.
갱년기(更年期), 혹은 폐경기[1](閉經期)는 노화에 따라 생식 기능이 저하되고 성호르몬의 분비가 급감하며 신체와 정신이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를 뜻한다. 대부분 40대~60대 초중반 사이에 나타나며, 40대 후반~50대 중반 사이에 나타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지속 기간은 평균 5~8년이다.
주로 여성에게서 일어난다고 알려졌으나, 연구 결과 중년에 접어드는 시기의 남성에게도 어느 정도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젊은 나이라도 난소 등의 생식 기관을 적출받거나 장기간의 항암 치료를 받은 여성에게서도 나타난다.
갱년기 증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훨씬 심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노화가 빠르고 신체적•정신적으로 훨씬 취약하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몸에 큰 무리가 가는 것의 영향도 있다.
설마.. 갱년기인가? 40대 60대 사이에 올 수 있다 하니 마흔여섯, 나에게도 올 수 있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갱년기 증상" "갱년기 증상 체크리스트"를 검색했다.
작년 말 즈음부터 30여 년간 귀신같이 규칙적이던 생리주기가 불규칙적이기 시작했고, 올여름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데도 콧등과 볼 주변에 땀이 났었다. 하루 만보가 넘게 걸어 다녀도 괜찮던 무릎도 아프고 얼마 전엔 갑자기 유방통이 생겨 동네 유방외과도 다녀왔더랬다.
그러고 보니 근래에감정기복도심해져서 아이들과 남편과도 자주 부딪혔다.부딪힐 때는 버럭버럭 했다가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데 왜 그랬지 하며 후회를 했다.
모두 전에 없던 증상들이었다.
아래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가장 최신 업데이트 된 갱년기 증상 체크리스트라고 한다.
나는 무려 22개나 해당된다.
갱년기 증상 30가지 체크리스트
1. 불규칙한 생리(0)
2. 안면홍조(이건 술 마실 때만 0)
3. 야간 발한(0)
4. 수면장애(0)
5. 피로감(0)
6. 감정기복(0)
7. 기억력저하(0)
8. 관절통(0)
9. 두통(0)
10. 체중증가(0)
11. 소화장애(0)
12. 건조한 피부(0)
13. 질건조증(0)
14. 성욕감퇴(0)
15. 탈모(×)
16. 손톱약화(0)
17. 눈건조증(0)
18. 귀울림(이명)
19. 가슴통증(0)
20. 혈압상승(×)
21. 심계항진(×)
22. 뼈약화(×)
23. 소변빈도 증가(0)
24. 요실금(×)
25. 냉감(0)
26. 정신적 피로(×)
27. 변비(×)
28. 허리통증(0)
29. 소변감염(×)
30. 우울감(0)
잔잔하던 내 삶에 갱년기라는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눈앞에 밀려오고 있는 갱년기 파도를 피할 순 없을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그리고 나와 내 가족 주변인들이 힘들지 않게 이 파도를 넘어설지에 대한 방법을 찾아 갱년기와 아름답게 이별하고 싶다. 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갱년기를 치면 연관검색어로 나오는 "갱년기 증상 체크리스트"말고 이번엔 "갱년기 극복법"을 찾았다.
일단 이미 찾아온 손님을 맞이해 보자.
말만 하면 눈물을 쏟아내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사다 준 갱년기 영양제를 매일 챙겨 먹고, 일주일에 3일은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기로 다짐해 본다. 식단도 조절해 보자. 육고기보다는 채소 위주로 먹고(주 5일은 고기를 먹는 나였는데ㅠ) 하루 1잔으로 하루 종일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던 커피를 일주일에 한잔으로 줄여보자. 그렇게 해서 잠을 잘 자서 불면증을 떨쳐내 보자. 다음 날 개운하게 일어나 새벽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이 반갑지 않은 손님과 웃으며 이별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