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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맘 Nov 11. 2020

왜 그런결혼을 해?  

E와 J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20대 후반, E가 먼저 6년 넘게 연애를 한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뒤따라 J는 엄마가 주선해준 남자와 선을 봐서 초고속으로 결혼을 했다.




E의 남자친구는 직장하나 번듯한것 빼고는 그야말로 최악의 결혼상대였다. 시부모님은 두분다 지병이 있으셨고, 예적금은 고사하고 집조차 없으셔서 월세를 살고 계셨다. 일도 못하시니 시부모님의 월세며 생활비는 모두 E의 남자친구 몫이 될터였다. 위로 누님이 두분이 계셨지만 생활에 보탬이 되어 주시지는 않는 듯했다. 심지어 그녀의 남자친구는 부모님의 빚까지 떠앉고 있었다. E는 그 모든 것을 알고 그 결혼을 한 것일까. 알고 시작했으면 정말 감당할 자신은 있는 걸까.


J가 선을 봤다는 그 사람은 대기업을 다닌다고 했다. 고향은 지방어디라고 했는데, 그 지역에서도 공부를 꽤 잘해서 서울의 알아주는 대학을 나왔다고 동네에서 꽤 유명하다고 했다. 남편될 사람은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J는 친정근처에 두사람이 살기에 무난한 평수의 아파트를 샀고 그에 맞는 혼수를 들였으며, 결혼식은 남편의 부모님이 계시는 지방에 가서 올렸다. J의 결혼생활은 무난할 듯 싶었다.  





예상대로 E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E는 결혼 후에야 실제 빚의 금액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시댁식구들과 남편이 한편이 되어 자신을 속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그 지점에서 그만 멈출 줄 알았던 E의 결혼생활은 어떤 이유인지 멈추지 않았고, E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첫아이를 낳고 두달만에 직장에 복귀하면서 그 어린아기를 12시간씩 어린이집에 맡겼다. E의 시부모님은 두분이 내기를 하듯 번갈아 가면서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셨다. 그때마다 모든 병원비는 E 부부의 몫이었다. 그녀는 여름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여름만 되면 모아뒀던 목돈이 병원비로 나가버렸으니까.


첫아이 돌잔치를 끝내고 식대 정산을 하고도 300만원이 남았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물었더니 사실 식대정산을 친정엄마가 일부 해주셨다고 했다. 축의금 들어온건 E의 비상금으로 쓰라는 친정엄마의 배려셨다.

  

나중에 그 비상금으로 무얼 했냐 물으니 E는 씁쓸하게 웃으며 시부모님 생활비로 드렸다고 말했다. 다리수술을 하신 시아버지가 움직이시질 못해서 몇달 하시던 경비일을 그만 두셨노라고. '몇달은 더 쉬셔야 한대. 근데 일을 못하시니 생활비가 없으실 거잖아. 그래서 드렸어. 근데 어머니집에 가보니까 김치냉장고가 새로 바껴있더라. 왠 김치냉장고냐 물어보니까, 그동안 아버님이 버신걸로 새로 사셨다더라고...'


E에게서 점점 웃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J의 문제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생겼다. 결혼한지 채 일년도 되지 않았을 무렵, 그녀는 남편에게 다른여자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자신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설마..에이 설마.. 아닐거야. 니가 오해한거겠지.라고 애써 부정하며 위로하려 했다. J는 그래, 내가 오해한걸수도 있는거겠지? 라며 애써 마음을 감췄다.


나중에 J는 말했다.

J는 남편과 결혼초부터 안맞았지만 그게 뭐가 안맞는건지 몰랐다고. 그저 다른 부부들이 결혼초기에 다들 겪는 성장통같은 것인줄 알았다고. 자주 싸웠지만 그것 역시 다른 부부들과 비슷하게 겪는 일인줄 알았다고.

그런데 남편이 그 여자에게 고백을 했다고 했다. 사실은 너를 좋아한다고. 내 마음속에 있는건 너뿐이라고. J는 남편이 그 여자에게 보낸 문자를 몰래봤고  이게 뭐냐고 남편에게 따져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J가 원했던 그런 답이 아니었다.

'와이프가 남편 몰래 핸드폰 뒤져보면 보통 남편은 되레 왜 몰래봤냐고 화내야 하지 않아? 근데 그 사람은 표정 변화가 하나도 없었어. 오히려 담담하게 그러더라. 나 그여자 좋아해. 제발 나좀 놔줘. 그러면서 나한테 무릎 꿇었어..'


J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E는 소처럼 열심히 일했고 제테크도 제법 했으며 운도 따랐다. 12평 작은 신혼집아파트가 6개월만에 값이 두배로 뛰자 그녀는 그것을 밑천삼아 여러번 이사를 다니더니 어느덧 47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월세를 전전하시던 시부모님께 대출을 받아 전세를 얻어드리더니 날로 뛰는 전세값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그녀가 선택한건 합가였던 모양이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 그녀에게 합가는 어쩌면 이득일 수도 있어서 딱히 나빠보이진 않았다.  


결혼한지 햇수로 13년째라는 E는 요즘 많이 편해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걸까? 아니면 그저 세월이 약이었던 걸까? 많이 웃는 E를 보고 있자니 고등학교때 늘 교실이 떠나가라 웃곤했던 그때의 E가 생각난다.  

 



한국을 떠나 마음을 추스리고 돌아온 J는 옛사랑과의 결혼식에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뒤늦게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알게 된 친구들은 J의 집에 갔다. 거기서 J의 수더분한 남편을 처음 만났다. 그녀의 남편은 대학시절 사귀던 사람이었고 많이 좋아했지만, 엄마의 뜻을 거역할 만큼 그 사람이 절실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엉망이었던 그때도, 한국에 없었을 때도, 다시 돌아온 그때도 J의 남편은 항상 그자리에서 그녀를 보듬어줬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으며 그래서 남편의 배경과 상관없이 결혼할 수 있었음을 고백했다.


J의 엄청난 제테크 능력은 그때부터 빛을 발했다. J는 남편을 존중했지만 시댁의 가난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용맹한 무사처럼 거침없이 앞을 향해 질주해 나갔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시피 한 그녀의 제테크능력에 우리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J가 선을 보고 온날 E가 물었다. "어땠어? 좋은 사람 같아?"

"글쎄, 한번 보고 어떻게 알아, 그래도 난 이사람이랑 결혼할거야"

"몇번 더 만나보고 좋은사람인지 아닌지 보구 판단해야지 무슨 결혼을 그렇게 해"

"결혼은 그냥 이렇게 하는 거야, 너처럼 사람만 보고 어떻게 내 인생을 맡겨, 사람외에 것도 결혼에서 중요해. 넌 왜 그런걸 안보려고 해. 너처럼 괜찮은 애가 왜 스스로 불구덩이를 들어가려고 해. 아니, 다른애는 시댁에서 집도 떡하니 받는데, 넌 뭐가 모자라서 그런 결혼을 해?"


E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난 뭐가 모자라서 그런 결혼을 한걸까.


J의 엉망이었던 마음을 그녀의 남편이 보듬어주면서 그녀가 위로받았듯, 나역시 6년간의 긴시간동안 지금의 남편에게서 위로와 사랑을 받으며 안식을 찾아서 그사람이 없으면 안될것 같아서 그랬노라고 대답하면 안되는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질문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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