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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맘 Apr 22. 2021

그때 그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2010년 1월, 첫째를 낳고 처음 맞는 겨울이었고, 그날 밤은 유난히 찬바람이 거세어 체감온도가 뚝 떨어져 매우 추웠다.


아이를 씻기고, 이유식을 먹이고 잠깐의 여유가 생긴 저녁시간이었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정체모를 괴성이 들렸다. 불이 났나? 도둑이라도 든건가? 잠깐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그 괴성의 정체는 아래층 아주머니가 누군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5층으로 된 아파트가 다 날아갈 만큼.

누군가를 향해 욕을 퍼부으며 "나가! 당장 나가!" 라고 소리지르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부부싸움을 크게 하시는건가..

부부싸움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방적으로 아주머니 목소리만 들렸기에 조금 이상했다.

어쩌지..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나..

다른 집 이웃들은 근데 왜 가만히 계시는거지..소리가 안들리는건가..

온갖 잡생각끝에 나는 결국 우리집 현관문을 열고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본 아래층엔 속옷만 입고 있는 남자아이 둘이 굳게 닫힌 집 현관문앞에 어쩔줄 몰라하며 서있다가 문을 몇번 두드리더니 이내 체념한 듯 아파트 바깥문을 열고 찬바람이 거세게 부는 겨울밤거리로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이를 들쳐업고 꽁꽁 싸맨 뒤 급한대로 집에 있는 이불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아파트 담장옆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4,6학년 정도 되었을까. 아이들은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둘이 서로를 꼭 안고 앉아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너희들 왜 여기 있어? 추운데 집에 들어가자"

그러자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저희 말 안듣는다고 밖에 나가래서 나왔어요. 지금 들어가면 또 맞아요"

이번엔 형으로 보이는 아이가 말했다. "들어가면 죽도록 맞아요, 차라리 밖에 있는게 나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명백한 아동학대이다. 있어서는 안되는.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집으로 가 벨을 눌렀다. 나는 이미 흥분상태라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아니, 아주머니! 애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로서니 이런 날에 밖으로 쫓아내세요! 옷도 안입히고! 너무하신거 아니에요!"

"애기엄마! 당신이 뭔데 남의 집 일에 참견이야! 내 새끼 내가 알아서 해! 당신 새끼나 똑바로 키워!"

그리고 그 집 문은 다시 닫혔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뭐 이런 X같은 경우가 다 있어! 라고 중얼거리며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그제서야 온갖 소란스러움을 다 듣고도 가만히 있던 이웃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저간의 상황을 설명하며 명확한 아동학대라고 경찰에게 강하게 어필을 했고, 아주머니는 학대는 무슨, 그냥 남자애들 두놈이 너무 말을 안들어서 잠깐 강하게 혼내주려고 그런것 뿐이라고 주장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사이에 남편이 퇴근길에 경찰차가 집앞에 있는 걸 보고 놀라며 들어왔다. 무슨 상황인지 대충 파악을 한 남편은 내등에 업혀 잠든 아이를 받아 안으며 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너 싸움 잘 못하잖아. 질거 뻔하니까 대충 하고 들어와' 


서로의 입장을 다 들은 경찰은 나에게 말했다. "자, 뭐 애들이 겨울밤에 밖에 있어서 놀라서 신고하신거 같은데,  1층 아주머니가 앞으로는 안그러신다고 하니까 이웃간에 좋게좋게 해결 하시죠"


좋게좋게? 이건 무슨 X소리냐. 나와 1층 아주머니의 입씨름에 대한 해결을 좋게좋게 끝내란 말인가? 그래 그건 좋게 끝낼수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학대한건 어떻게 좋게 끝낼 것인가? 내가 이부분을 짚자 경찰은 답했다. 1층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아니, 이 추운날 밖으로 속옷만 입혀서 애들을 쫓아냈는데 그게 학대가 아니면 뭐에요? 라고 되묻자 1층 아주머니는 살짝 겁만 준거다, 금방 데리러 나가려는데 당신이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냐! 라고 당당하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여기서 말문이 막혀서 더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남편말대로 나의 패배로 끝났다.




그 일이 있고 난뒤 그 집에서 자주 아이들에게 온갖 폭언과 고성을 지르는 아주머니의 행동은 계속되었지만 집밖으로 쫓아내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가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그 일이 있은뒤 몇 개월 뒤 이사했다) 

언젠가 우연히 윗집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라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1층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때리고 폭언을 하고 쫓아내고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나처럼 몇몇 분은 경찰에 신고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냥 남의집 일이라 생각하고 신경끄고 살았다고 한다. 그제서야 내가 1층 아주머니와 설전을 벌일때 이웃들의 반응이 왜 그러했는지 이해가 갔다.


신고한 이웃중 몇몇은 시끄러워서 신고한 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엄마가 아이들을 너무 많이 때린다, 와서 좀 봐달라' 고 신고한 이웃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신고는 다 부정당했고 '한 가정의 훈육'으로 치부당했다.

내가 대단한 정의감이나 사명감으로 신고한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그 아이들에게서 내 어릴적 동생들의 모습이 겹쳐보였기에, 가정의 훈육차원을 넘어선 학대를 보고 자란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훈육'의 탈을 쓴 '학대'는 마땅히 사라져야 하므로.


어렸을 때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들 혹은 학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나타난다. 자신이 또다른 아동학대의 가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그때 그 아이들은 상처가 아물었을까.

10여년이 지난 지금, 아마도 성인이 되었을 그때 그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하 수상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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