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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k Jul 02. 2018

#3 퇴사 : 퇴사 전 알아야 할 것

프로퇴사러의 퇴사팁 2

퇴사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며칠 전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 어떠하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린 결론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 100프로 떨어지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필자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그렇게 잘 안다고 떠들 수 있는지 한번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내 자신을 알도록 해준 계기는 바로 "퇴사" 였다.


1. 시간 낭비

 

잠깐 나의 20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나의 20대는 아버지로부터 혼나지 않기 위한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괜찮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버지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나의 의견은 항상 철없는 소리 정도로 치부되고는 했었다. 또한 우리 아버지는 경찰 출신 중에서도 굉장히 엄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버지 말에 뭔가 반박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내 의견은 절대 표현하지 않은 채, 아버지가 좋아할만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하는 20대를 보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을 다시 본다거나, 편입 준비를 한다거나, 그리고 공무원 준비를 해야 겠다며 책을 산 것도(결국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그런 시험을 붙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부모님과 얘기를 하게 되면 수능을 다시 본다고 한 것도 나이고, 편입 시험을 본다고 한 것도 나인데 왜 내 핑계를 대느냐고 아버지는 가끔 말씀하시고는 한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그 시험들을 준비했던 이유는 그 시험을 통과하면 더 이상 아버지한테 혼나지는 않아도 되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 시험에 합격만 하면 드디어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시험 준비를 하기는 하였으나, 내가 정말로 왜 해야되는지를 몰랐으므로 집중력이 생길리는 만무했다. 단순히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동기로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도 고통을 주는 일이 아닌가 싶다.


군전역 후 요리사가 되고 싶어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으나 결국 편입 준비을 하면 어떻냐는 아버지의 말에 편입 준비를 하면서 그 기회는 날렸고, 편입 시험을 포기한 직 후부터는 영어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붙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영어로 무언가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통번역 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다. 혹시 영어를 잘하면 편입 시험도 당연히 붙을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TOEIC 시험을 만점에 가깝게 맞거나, 스피킹 시험에서 최고 등급을 받을 수는 있어도(실제로 받았다) 편입 시험은 나와는 맞지 않는 시험인 것 같았다. 굳이 말하자면 영어 시험이라기 보다는 영어와 연관성이 있는 시험을 위한 시험 문제일 뿐이다.


통번역 대학원은 비전이 없다며 하지 말라고 하고, 도대체 뭘해야 될지 모르는 와중에 대학교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4학년 2학기부터 구직활동을 치열하게 시작한 끝에 첫 직장을 잡게 되었다. "더 이상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도 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기쁨도 잠시,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에 들어가니 막상 외부에서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살짝 놀라게 되었다.


2. 여정의 시작


처음 면접 보았던 때를 떠올려 보도록 하자. 면접 후 수시로 회사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리던 때를 기억하는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회사의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리며 직무 소개도 읽어보고, 회사 복지 리스트도 읽어 보며 "정말 이 회사에 가고 싶어!!"라는 심정을 가눌길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여러분이 회사에 막상 가게 되면 거기에 적혀져 있는 내용 대부분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나 회사 내부 게시판을 읽다 보면,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할 시간에 여행이나 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어떤 회사를 가든 100프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정도는 넘어가 주도록 하자. 문송한 문과생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직무인 영업 직무로 회사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대부분의 문과생들은 곧 깨달을 것이다. 문과생의 유일한 도피처인 공무원 시험 준비와 각종 공기업 시험 준비를 하며 푼 문제들은 여러분이 영업을 하는데 있어 아무런 쓰잘때기가 없음을. 내가 왜 문과를 택했는지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 사실 영업 직무는 중학교만 나와도 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직무이기에 , 이 일을 해서 나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당신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시점이다.


내가 정말 안타까웠던 점은 대학교 시절에 무엇이 되었든 일다운 일을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업이 되었든, 작은 회사의 경리가 되었든, 회사의 직무를 경험한다는 것은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학생이 대학교로 바로 진학하는 것보다는,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동안은 일을 배우며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지 모색하는 과정을 신설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후 몇 년 동안 나는 나만이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한 여정을 걷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띄었던 것이 바로 베트남어이다. 우연히 베트남어를 1년 동안 공짜로 가르쳐 주고 취업도 시켜준다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베트남어라는 전문성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마음에 품고 지원서를 넣게 되었다. 사실 굉장히 오만하지만 첫 직장을 붙었으니, 그 정도는 당연히 붙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원서를 넣은 후 회사를 단숨에 때려치게 된다.(사실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경쟁률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너무 낮았기에, 그당시 내 스펙을 봤을 때 도저히 불합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 낮았다는 이야기이며, 지금은 그때 보다 많이 높아진 걸로 알고 있다. ) 결국 그 프로그램을 합격하게 되어 1년 동안 베트남어를 배우게 된다.


참고로 나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산 것만 치고는 꽤 잘하는 편이다. 이 세상에 한글로 얻을 수 없는 정보는 있어도, 영어로 못 얻을 정보는 없다는 신념 하에 영어에는 대학 시절 동안 꽤나 시간을 투자한 덕분이었다. 그래서 베트남어 역시 꽤나 잘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고 실력이 늘지 않았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베트남어를 배울말한 유인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초반에는 베트남 여자친구를 사귀어서, 꽤나 열심히 했으나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에는 흥미를 잃고 만다. 베트남 노래, 소설, 영화, 그리고 기타 등등 도저히 베트남어 학습에 흥미를 끌만한 컨텐츠가 단 1도 없다는 사실 또한 나의 베트남어 학습을 힘들게 하였다. 내가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영어로 된 문서를 읽거나, 그와 관련된 영상을 보았던 덕분이지 그게 아니라면 영어를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나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나는 내가 실제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게 아니면 별로 노력을 안하는 스타일이구나. 다만 실제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기도 하구나."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내가 실제로 노력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3.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베트남에서의 취업 역시 내가 노력 기울일 만한 회사에 취직 하는데 중점을 기울였다. 사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기서 정해주는 기업에 가는게 현실이긴 하지만, 내가 가고 싶지 않은 회사는 가지 않을 권리가 있을 뿐더러 그들도 취업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내가 원하는 분야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베트남에 오기 전부터 신발 제조 업체에서 근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왔기 때문에, 신발 제조 업체로 취직을 하게 된다.


그리고 2주만에 나오게 되는데, 내가 지금까지 퇴사를 여러 번 하면서 내가 퇴사후 해야할 일을 확고히 정하지 않고 퇴사한 경우가 두 번이 있다. 두번모두 건강상의 문제였는데 베트남에서의 퇴사가 그랬다. 베트남의 신발 공장은 정말 열악하다. 헥산이라는 냄새가 엄청나게 나는 화학액체를 맨손으로 만지고, 마스크도 끼지 않는다. 입사 하루만에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받아서, 여기서 조금만 더 있다가는 왠지 저 세상에 가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저 세상에 가면 다행이지만, 왠지 식물인간이 될 것 같았다.(나의 20대는 인생에 굉장히 회의적인 시기였기도 하였다.)그래서 결국 한국으로 컴백하게 되었다.


운동화 관련 공장에서 일을 해보는 것이 나의 로망 중 하나였는데, 이런 경험을 하고 보니 그쪽은 아닌가 싶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공장 특유의 군대식 문화 역시 나와는 정말 맞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적어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을 일이 무엇인지는 리스트가 생기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 리스트 : 영업직, 신발 공장 업체, 군대식 문화


이 세개가 포함되지 않는 직장을 잡는 것이 한국 컴백 후 나의 타겟이 되었다. 또한 이 때쯤 나는 스타트업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스타트업 회사에 취업하는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고 운이 좋게도 대부분이 알만한 당시 막 떠오르는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4.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안타깝게도 또 다시 퇴사하게 된 이유는 다시 건강상의 문제였다.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대상 포진에 걸렸기 때문에 도저히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다만 이 회사에서 내가 흥미를 가지는 분야가 생겨나게 된다. 바로 프로그래밍이다.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고, 프로그래밍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뭘 하든 꼭 필요한 것이라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건강상의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고, 한 수입사에서 무역 업무를 보게 되었다. 다만 이 회사는 굉장히 작은 규모 였기 때문에 무역 업무만 보지는 않았다. 나의 업무는 무역 업무 뿐만 아니라, 영어와 관련된 일 역시 모두 나의 몫이었다. 추가로 이 회사에서 나는 전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데이터 관리 틀을 만들게 된다.


데이터 관리 틀을 만들거나, 엑셀로 데이터를 만질 때마다 재미있게 일하는 나를 보며 역시 이쪽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2017년부터는 집에 와서도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게 되었다. 약 1년 동안 공부를 하였지만,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고, 도저히 실력이 늘지 않는 듯 하였다.


사실 스스로 이러한 공부가 가능했던 이유는 회사의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7년 당시만 해도 나와 회사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면 회사를 키울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영업실장과 사장님 정도를 제외하고는 나이차가 많지 않아, 자유롭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나 나는 회사의 관리쪽 이야기를 많이 했고, 마케팅 관련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회사를 좀 더 발전시킬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헤게모니를 쥔 사람이 정말 답이 없을 경우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이전까지 회사에서 한 사람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영업 실장을 보고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조현아 한 사람 때문에 진에어 허가 자체를 다시 검토할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그의 영향력은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이직을 꿈꾸게 할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영향력이 회사에 진에어 허가 취소 만큼의 영향력을 미칠 때즘, 마침 주위 사람들과 창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고, 나도 창업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창업 관련 아이템이 떠오르게 되었다. 거기에 더불어 회사의 미래도 보이지 않고, 회사의 적폐세력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 갈등이 심해지던 중 창업을 결심하고 회사를 나가게 된다. 프로그래밍 공부가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 진득하게 공부해보고 싶었던 것도 마음도 있었다.


5. 퇴사를 통해 알게된 것들


이 모든 것이 첫 취업 후 약 4년 동안 이루어진 일이다. 4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여러번 회사를 이직하기도 했고, 베트남에서 1년 동안 생활하기도 하였다. 20대 때와 달라진 점은 단 한가지이다. 20대 때까지는 아버지한테 잘보이기 위해서, 혹은 혼나지 않기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탐색할만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는 나를 찾는 과정이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첫 직장에서 꾸준히 일했다면 지금쯤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가끔 생각을 해본다. 물질적으로는 그래도 안정적이기는 하겠지만, 결국 욕이나 달고 살면서 언제 회사 그만두나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 프로그래밍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는 정말로 생각해보지도 못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업을 하는데 프로그래밍은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퇴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 별 불만이 없고, 스스로 만족한다면 퇴사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가 정말 도저히 다닐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거나,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퇴사를 함으로써 자기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기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퇴사를 한다면, 지옥 속으로 빠져들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퇴사를 한번 하게 되면 다시 직장을 잡거나 스스로의 일을 하게 될 때까지 내가 한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내가 경험한 이 4년 동안의 자아 찾기 과정이 20대 초반 혹은?적어도 2~3년만 일찍 이루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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