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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illery Story- 발블레어 증류소

하이랜드 수류탄 보틀

by 위스키내비
image (67).png 발블레어 증류소

스코틀랜드 북쪽으로 향하는 관문도시인 인버네스(Inverness) 를 지나 북쪽으로 달리고 또 달리면, 2시간쯤 지나 한 증류소가 나옵니다. 그곳이 바로 테인, 그리고 테인의 터줏대감 증류소인 글렌모렌지이죠. 그 글렌모렌지마저 지나 10분쯤 더 북쪽으로 가다 보면 붉은 기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증류소, 발블레어 증류소입니다.

5분 걸러 하나씩 증류소가 나오던 스페이사이드와는 다르게, 하이랜드, 특히 북쪽 하이랜드는 상당히 드문드문 증류소가 위치합니다. 이 ‘발블레어’ 증류소만 해도, 이 증류소보다 북쪽에 위치한 싱글몰트 증류소는 딱 4곳, 도녹 증류소, 클라이넬리시 증류소, 올드 풀티니 증류소, 울프번 증류소입니다. 참 신기한 것은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증류소들이 비지터 센터가 있다는 점입니다.

image (68).png 남정네들이 치마입고 뛰댕기는 영화, 엔젤스 셰어

여튼, 발블레어 증류소는 스카치 위스키에 관한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영화인 ‘엔젤스 세어’ 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증류소입니다. 1790년에 지어져 운영하기 시작한,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증류소죠. 처음 지은 후 약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탈하게 운영되었던 발블레어 증류소는 1890년대 후반의 위스키 불황과 1910년의 1차 세계대전을 버티지 못하고 1911년 폐쇄되고야 맙니다. 약 30년간 폐쇄되어 있던 증류소는 처칠의 칙령으로 위스키를 생산해 미국에 판매하게 되면서 다시 가동을 재개하게 됩니다. 이 증류소는 ‘올드 풀티니’ 의 주인이었던 로버트 커밍이 1970년대까지 운영하다가, 캐나다의 회사인 ‘하이람 워커’ 에 매각됩니다. 하이람 워커는 ‘Allied Distillers’ 에 인수되고, 이것이 결국 현재의 ‘인버 하우스’ 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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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부터 230년간 위스키를 만들어 온 역사가 깊은 증류소지만, 그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헤리티지’ 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증류소가 바로 헤리티지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죠. 역사뿐만이 아니라, 그 역사에서 한 증류소가 어떤 명성을 쌓아 왔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가 바로 헤리티지라는 것입니다. 글렌그란트와 글렌피딕의 경우에는 싱글몰트의 글로벌화에 크게 기여했고, 맥캘란은 셰리 캐스크의 공급과 생산에 전념했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요는 ‘헤리티지’ 라 함은 증류소의 역사와 더불어서 증류소의 캐릭터가 같이 어우러졌을 때 이루어지고, 이러한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마케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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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헤리티지가 부족해서인지, 발블레어는 정규 라인업보다는 빈티지 라인업을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빈티지 제품들 또한 46%라는 낮은 도수와, 버번캐스크와 셰리캐스크를 왔다갔다하는 낮은 일관성으로 인해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전반적인 평가 또한 크게 도드라지는 점이 없었다는 점을 보면, 시장에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image (71).png 발블레어의 새로운 라인업

2019년, 발블레어는 기존의 빈티지 라인업을 철회하고, 12년, 15년, 18년, 25년의 라인업으로 채워진 새로운 라인업을 발표앴습니다. 병의 모양과 라벨링도 사뭇 달라졌고, 무엇보다 마케팅 전략이 달라졌죠. 발블레어의 마케팅 전략 수립을 맡은 스피릿 마케팅 전문 회사인 ‘Yesmore’는 기존의 스카치 인플루언서, 혹은 위스키 애호가들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컨텐츠 제작자들을 위주로 새로운 SNS 마케팅을 전개했습니다. 지역 예술가, 모험가, 하이커, 사진작가 등의 컨텐츠 제작자를 통해 새로운 라인업을 알렸고, 이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던 듯 보입니다.

image (72).png 출처: Yesmore 홈페이지

하지만, 위스키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면 발블레어는 아직 애매한 증류소입니다. 스피릿의 묵직한 느낌도 12년, 18년, 25년이 다른 데다가, 강력한 유인책이 될 CS급 위스키나 싱글 캐스크 제품도 없고, 버번캐스크 혹은 셰리 캐스크 어느 곳에서도 명확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지 못합니다. 12년 제품은 ‘할인 시에’ 꽤나 추천할 만한 엔트리급 위스키이지만, 급이 올라가면서 확 비싸지기에 함부로 추천하기도 애매하구요. 결국 어떠한 캐릭터를 확립하고 품질과 일관성을 동시에 가져가야 쉽게 추천하고 추천받을 수 있는 증류소가 되는 것인데, 발블레어는 한 마디로 줄여 설명하기에도, 추천하기에도 애매합니다.

image (73).png 핸드필은 아주 맛있는데 말이죠

독립병입 시장에서도, 발블레어는 찾아보기 꽤나 어렵습니다. 인버 하우스 소속 증류소들의 원액이 평균적으로 더 비싸기도 하고, 발블레어의 원액은 그 중에서도 비싼 축에 속합니다. 올드 풀티니가 제일 비싸고, 그 다음 발블레어 순이죠. 탈리스커처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비싸게 구해야 하는 원액입니다. 그래서인지, 독립병입에서 만나 이미지를 쌓기도 왠지 어려운 느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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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발블레어는 북부 하이랜드의 몇 없는 증류소로서 북부 하이랜드의 몇 없는 증류소로서 훌륭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는 증류소입니다. 다만, 우리 소비자들에게는 ‘어떤 위스키인지’ 제대로 각인되어 있지 않고, 브랜드 차원에서도 캐릭터를 확립하고자 하는 명확한 방향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브랜드의 이미지, 내지는 테마의 각인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케이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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