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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는 셰리 칵테일의 꿈을 꾸는가?

웻 캐스크란 도대체 뭘까

by 위스키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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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 일종의 작은 언쟁이 붙었습니다. 사실 항상 있는 언쟁이지요. 바로 캐스크에 관한 논쟁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대개 결론을 찾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납니다. 관능의 영역을 논리의 영역으로 끌고 오려는 시도의 결말이 대개 그렇죠. 위스키의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인 대부분의 사람들로서는 ‘이러이러하면 맛있더라’ ,’저러저러하면 저런 맛이 나더라’ 의 관능평가에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더 많이 마셔 본 사람이 목소리가 커지게 됩니다.

(특히 요즘 sns의 발달로 많이 마셔 본 티 내기가 더 쉬워졌죠)

그래서, 오늘은 그때 못 다 했던 이야기. 웻 캐스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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웻 캐스크. 셰리 캐스크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증류소와 독립병입업자들이 캐스크에 통입을 할 때, 셰리 캐스크의 셰리를 빼지 않고, 위스키와 섞는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이 웻 캐스크 논란은 참 절묘한 포인트에서 사람들을 ‘긁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를 좋아하는 우리는 그 중에서도 색이 진하고, 맛도 진득한 위스키를 원합니다. 거의 항상 그렇죠. 더 달고, 더 자극적이고, 더 “야한” 그런 위스키를 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위스키 순수주의자로서의 정체성 또한 있죠. 위스키는 장인이 만들어내는, 물과 보리, 나무와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황금의 정수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래서 ‘플레이버드 위스키’ 라는 장르에 왠지 거부감을 느끼고, 첨가물이 들어가는 위스키를 꺼려하기는 하죠.

바로 이 지점에서 욕구 간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순수한 위스키라는 바운더리 내에서 최대한 달고 자극적이고 어두운 색을 가진 위스키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죠. 웻 캐스크 논란은 이 바람에

“그냥 셰리 칵테일 아니냐?”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이 질문 하나로, 위스키는 색도 맛도 달콤함도 칵테일만 못하고, 순수한 황금의 정수도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그야말로 긁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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웻 캐스크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길게 보면 옛날 위스키에 대한 환상에 가까운 향수에 기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의 셰리 캐스크를 구현하기 위한 대안이라는 것이죠. 사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는 틀렸습니다.

결국, 제가 하려는 말은 이렇습니다.

“드라이 캐스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논의는 시작부터 성립하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웻 캐스크와 드라이 캐스크가 무엇인지를 정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점부터 웻 캐스크일까요? 어떤 시점부터 드라이 캐스크일까요?

애초에, 드라이 캐스크가 있기는 할까요?

셰리 캐스크를 만들 때, 셰리 와인을 12개월~24개월 정도 캐스크에 넣어 두게 됩니다. 그 이후, 셰리 와인은 비워지고 스코틀랜드로 운송되어 위스키를 담게 되죠.

이 과정에서, 캐스크는 완전히 비워지지 않습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합니다. 캐스크 내부를 완전히 비워 놓으면 액체의 증발로 인한 목재의 뒤틀림, 박테리아의 번식 등 캐스크를 망쳐 버릴 만한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때로는 와인 대신 물을 넣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캐스크의 건조로 인한 위험을 경계하고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을 다 비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사실 여기까지는 다들 이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약간 남겨져 온 캐스크들이 스피릿을 맞이할 때, ‘과연 비우느냐?’ 라는 것입니다.

image (88).png 캐스크에 위스키를 통입하고 있습니다.

일단, 스카치위스키 규정에 따르면 위스키 숙성 과정에서 ‘첨가물’ 이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캐스크 내부에 있는 셰리 와인을 비워야 합니다. 하지만, 캐스크 내부에 있는 ‘첨가물’ 을 완벽히 비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크통은 스테인리스와 같은 금속 통과는 다르게, 내부의 용량뿐만 아니라 오크 스타브들이 머금고 있는 술의 양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ASB (American Standard Barrel) 사이즈의 버진 오크 캐스크와 Ex-버번 캐스크를 비교해 보았을 때, 둘 다 내용물 이 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 10~20kg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즉, 오크 스타브가 흡수한 술의 양이 그 정도라는 뜻이죠. 이 정도가 되면, 완전히 탈탈 비운다고 해도 충분히 위스키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크 스타브에 더해 캐스크 내부에 셰리 와인이 차 있는 것이 더 맛이 좋을까요?

그것 또한 아닐 겁니다. 스카치 위스키 증류소들은 주로 알코올 도수 63.5%에 맞추어 캐스크에 스피릿을 통입합니다. 그것이 스피릿이 캐스크와 균형을 이루고, 캐스크의 성분을 잘 추출하는 도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만약에 셰리 와인을 많이 섞어 버리게 될 경우, 이 밸런스가 깨지는 것뿐만 아니라 캐스크 내부에서 숙성을 견디지 못하고 캐릭터가 붕괴되어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셰리 와인을 ‘이빠이’ 넣는 것이 스카치 증류소 입장에서도 손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드라이 캐스크는 어떨까요? 만약 오크 스타브에 있는 모든 술을 다 뺴낸다면, 그걸 드라이 캐스크라고 볼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완전히 뺴낸다면, 드라이 캐스크라고 할 수 있겠죠. 오크 스타브를 모두 분해해서 말린 다음 재조립한다면, 드라이 캐스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굳이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 캐스크 판매업을 하는 사이트인 ‘midwest barrel co.’ 에서는 FAQ에 대한 대응으로서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 두었습니다. 이 글은 왜 캐스크를 샀을 떄 안에 잔여물이 남아 있는가를 잘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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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idwestbarrelco.com/blogs/commercial-barrel-aging/what-is-a-wet-barrel

바로 잔여물을 남기지 않고 건조시켰을 때, 그것은 이미 캐스크라고 불리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입니다. 습기가 들어갔다 나온 오크 스타브는 뒤틀리고 찌그러집니다. 그로 인해 캐스크는 액체를 담기에 매우 부적절한 상태가 됩니다. 한 마디로, 줄줄 샌다는 거죠. 캐스크를 완전히 말리는 일은 캐스크를 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비싼 퍼스트필 셰리 캐스크를 못쓰게 만들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퍼스트필 버번 캐스크 또한 그렇습니다.


물론, 캐스크를 모두 분해해서 스타브를 차곡차곡 쌓아 놓고, 그곳에서 맞는 스타브들을 골라 재조립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렴한 그레인 위스키용 캐스크나, 교환용 리필 캐스크 같은 것들은 운송비를 줄이기 위해 그렇게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요? 수백 수천, 때로는 수만 개의 캐스크들을 모두 분해한 후 재조립하는 것은 퍼즐을 모두 해체했다가 다시 맞추는 것 같은 어려움이 따를 겁니다.

그래서, 연 15만 개의 캐스크를 생산하는 스코틀랜드 최대급 쿠퍼리지인 ‘스페이사이드 쿠퍼리지’ 는 저렴한 그레인 위스키용 캐스크나, 교환용 리필 캐스크들을 주로 생산함에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쓰인 캐스크들을 드넓은 땅에 거대한 피라미드로 쌓아 놓고, 그 캐스크들에서 불량 스타브만 교체하는 식으로 캐스크를 재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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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엄밀한 의미의 ‘드라이 캐스크’는 스페인에서 들여오는 캐스크이든, 미국에서 들여오는 캐스크이든, 심지어 스코틀랜드에서 재사용되는 캐스크이든 ‘할 이유가 없습니다’.

현재 시장에 돌아다니는 ‘웻 캐스크’, ‘드라이 캐스크’ 의 이야기는 해외 캐스크 중개상, 국내 수입사, 국내 위스키 관계자, 위스키 소비자로 이어지는 ‘마케팅용 썰’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무 많이 넣는 것도, 아예 극단적으로 말리는 것도 위스키 생산자 입장에서는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웻 캐스크니 드라이 캐스크니 하는 희미한 논쟁보다는 그 시간에 술 한 잔을 더 마시는 것이 낫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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