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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illery Story-글렌오드 증류소

싱글톤의 간판 증류소

by 위스키내비
image (93).png 싱글톤 증류소 전경

하이랜드의 허리가 꺾이는 도시인 인버네스를 지나 20여분 정도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면 한 증류소의 문 앞에 도착하게 됩니다. 회백색 벽돌과는 상반되는 밝은 청록색 포인트 컬러를 가진 증류소인, ‘글렌 오드’ 증류소이죠. 증류소의 정문에서, 숙성고를 개조해 만들어낸 비지터 센터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비지터 센터가 스코틀랜드를 통틀어 가장 잘 갖춰진 비지터 센터라고 할 수 있죠.


image (94).png 글렌오드 증류소 비지터 센터

비지터센터 안으로 들어가면, 드넓은 라운지와 함께 수많은 디아지오 증류소의 굿즈와 제품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디아지오 SR시리즈, 증류소 한정 제품들과 뱃지, 티셔츠, 그리고 무엇보다 핸드필 보틀들이 있습니다. 라운지에서는

비지터 센터의 색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듯, 글렌 오드는 싱글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게다가 싱글톤의 원액 구성이 변동된다고 해도, 여전히 그 중심을 지킬 가능성이 높죠. 지금까지 투자한 브랜딩 비용이 있을 테니,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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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오드가 출시되는 ‘싱글톤’ 은 ‘밍밍톤’ 이라고 불리며 위스키 마니아들에게 외면받아 온 면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억까가 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그것도 브랜드 마케팅이 맞이한 한계이긴 하겠죠. 가볍고 프루티한 원액 스타일에다가, 40도의 도수로 출시되는 탓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싱글톤을 다른 엔트리급과 블라인드로 비교해 보면, 밍밍하다라는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더라도, 같은 40도대의 엔트리급 위스키들과 비교해 보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은 느낌입니다. 밍밍톤은 일종의 프레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렌오드가 싱글톤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1990년대에 나왔던 ‘싱글톤 오브 오크로이스크’ 가 그 시작이죠.

image (96).png 싱글톤 오브 오크로이스크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세 증류소, 더프타운, 글렌둘란, 글렌오드의 세 증류소로 이루어진 싱글톤 라인업은 2006년에나 선보여졌습니다. 글렌오드의 역사에서, ‘싱글톤의 글렌오드’ 로서의 기간은 길지 않은 셈입니다.

image (97).png 글렌오드 증류소

글렌 오드는 사실 디아지오의 몰팅 시설로서의 역사가 좀 더 긴 편입니다. DCL 소속이던 1968년부터 증류소 시설 옆에 대규모 몰팅 시설인 ‘글렌 오드 몰팅스 (Glen Ord Maltings) 를 설립하고, DCL 소속의 증류소들에게 몰트를 공급하는 역할을 추가로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디아지오의 핵심 몰팅 시설 중 하나로서, 버그헤드 몰팅스, 로즈아일 몰팅스, 포트 엘런 몰팅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여러 증류소들의 몰트 수요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디아지오의 네 몰팅 공장을 보면, 버그헤드 몰팅스와 그 확장판으로서 지어진 로즈아일 몰팅스가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수요를 담당하고, 피티드 몰트를 공급하는 포트 엘런은 아일라 증류소의 수요를 감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여타 하이랜드 증류소들의 수요는 글렌 오드 몰팅스가 감당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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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렌 오드 증류소가 싱글톤으로 데뷔한 것은 2006년입니다. 과거 ‘싱글톤 오브 오크로이스크’ 라는 브랜드를 계승해서 발표한 것이죠. 마치 지금의 ‘발렌타인 싱글몰트’ 처럼, 블렌디드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던 디아지오가 소속 증류소 3곳을 뽑아 싱글톤 브랜드 산하의 제품으로 출시했습니다.

다만, 이 결정이 좋은 결정이었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지금까지 싱글톤 위스키의 평가를 보면 더욱 그렇죠. 디아지오의 다른 몰트 위스키 라인업과 비교해 싱글톤이 영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캐릭터성의 부여도 상당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image - 2025-11-17T105241.510.png 디아지오 클래식 몰트-디스틸러리 에디션

‘디아지오의 몰트’ 를 살펴보면, ‘클래식 몰츠’ 6종과, 추가로 쿨 일라, 클라이넬리시, 모틀락 정도가 추가되는 그림입니다. 각자 지역을 대표하는 클래식 몰츠 시리즈와, 개성이 강한 증류소들로 이루어진 라인업이죠. 그런데, 여기서 싱글톤은 다소 붕 떠 있습니다. 하나의 증류소에서 확실한 캐릭터를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싱글톤이라는 브랜드 자체의 캐릭터가 확실한 것도 아닙니다.

image - 2025-11-17T105319.403.png 보통 증류소보다 브랜드를 크게 써붙이는건 독립병입의 스타일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싱글톤 위스키가 글렌오드인지, 글렌둘란인지, 더프타운인지 한번 더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더해, 그렇다면 이 증류소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으며, 이 위스키에서는 어떤 맛이 날지 예상이 가지 않기에 새삼스럽게 손이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브랜드로 묶인 싱글몰트’ 라는, 블렌디드 제품군인 조니 워커와,클래식 몰트 시리즈의 중간 정도의 포지션을 노린 것이 아닐까 생각은 듭니다. 40도로 세팅된 도수와, 큰 브랜드명에 비해 살짝 가려 놓은 증류소명을 보면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와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 사이의 느낌을 받을 수 있죠.

image - 2025-11-17T105401.540.png 양키센스 슈웃~

그러나, 디아지오의 예상보다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급증하기도 했고, 인터넷 상 정보의 발달 또한 빠르게 진행되어 굳이 중간 다리인 싱글톤을 경험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캐릭터가 확실한 싱글몰트를 먼저 접한 이들에게는 싱글톤의 맛이 다소 밋밋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시대와 전략을 잘못 타고 난 브랜드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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