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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처리 아니라고요

독립병입자는 어떻게 캐스크를 받을까

by 위스키내비

독립병입을 시작하고 나서 들은 말 중 가장 흔한 말이 바로 ‘짬처리 캐스크’ 입니다. 지금은 꽤나 덜 듣기는 하지만, 여전히 충분할 정도로 많이 듣고 있죠. 꽤나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캐스크의 유통 과정을 알고 있다면, 사실 하기 어려운 말이거든요.


일단, ‘흔히 아는’ 독립병입자의 생산과정에 대해 말해 볼까요.


첫 번째, 증류소가 위스키를 만들고 숙성한다.

두 번째, 증류소가 위스키를 테이스팅해 본다.

세 번쨰, 증류소의 프로파일과 다소 다른 위스키들을 독립병입자에게 판매한다.

네 번쨰, 독립병입자는 그 위스키를 판매한다.


증류소가 테이스팅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만드는 위스키 프로파일과 다른 원액들을 독립병입자에게 넘기고,그 중에서도 맛있는 원액은 싱글캐스크로 내거나, 친분이 있는 독립병입자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신생 독립병입자 (저희 같은)는, 맛없는 원액을 비싸게 사야 하는 짬처리를 당한다는 이론이지요.


image (91).png 상상도

이 이론은 반 정도만 맞는 이론입니다. 독립병입과 같은 사업에서는, 업자들 간의 친말도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면이 있습니다. 거래량과 빈도를 늘려 ’단골고객‘ 이 되면, 더 많은 원액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image (92).png 우리의 경우에는, TSC, Dram Mor과 꽤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글렌드로낙과 블라드녹 등 싱글 캐스크를 정기적으로 생산하는 증류소일 경우, 캐스크 테이스팅을 통해 특별히 맛이 좋은 캐스크를 선별하기도 하니, 증류소의 테이스팅 또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론은 맞는 거 아닌가요?

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주장은 대다수의 독립병입 원액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독립병입 위스키는 조금 다른 절차로 만들어집니다.


첫 번째, 위스키 증류소에서 벌크딜을 내놓습니다. 두 번쨰, 캐스크 브로커가 이 벌크딜을 인수합니다. 세 번쨰, 캐스크 브로커는 이 벌크딜을 독립병입업자에게 판매합니다. 네 번쨰, 독립병입자는 이 벌크딜을 구매한 후, 테이스팅합니다. 이 캐스크들을 출시하거나, 추가 숙성하거나, 다른 독립병입업자에게 판매합니다.

생각해 보면, 독립병입 위스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증류소들이 몇 있지 않나요? 글렌엘긴, 링크우드, 티니닉, 마녹모어, 글렌토커스, 밀튼더프, 블레어 아솔… 이런 증류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대기업 소속, 블렌디드 위스키의 원액이라는 점이죠.

91a7934c-85ec-47c7-9bff-792d038df261%3Fwidth=1004 티니닉 증류소. 가보면 앞쪽 잔디밭에 토끼들이 뛰놀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류소들의 원액은 주로 매년 대기업의 벌크딜에서 나오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스키 증류소들은 130여개가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소수에 불과하죠. 그리고 대다수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의 제 1의 목적은, 바로 블렌디드 위스키에 원액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 대다수의 위스키 증류소들이 블렌디드 원액을 공급하고 나면, 남는 원액들이 벌크딜에 포함되게 됩니다.

이 벌크들이 나오는 이유는, 위스키 증류소의 생산력에서도 기인합니다. 글렌알라키 증류소의 예를 들어 볼까요.

190724-GlenAllachie-000094-scaled.jpg 글렌알라키 증류소

글렌알라키 증류소의 생산 캐퍼시티는 연 4백만 리터입니다. 그리고 2년 전 기준으로, 캐스크를 약 5만개 정도 보유하고 있죠. 추가적인 숙성창고를 더 지었을 테니, 50프로 더 늘려 7만 5천개라고 해보죠. 생산 캐퍼시티는 순수 알콜 생산량 기준이니, 위스키의 통입도수인 63도 정도로 생각해 보면 통입할 스피릿은 연 630만 리터 정도가 나온다고 보면 되겠네요. 그럼 이 스피릿을 250리터 혹스헤드에 넣는다고 하면, 1년에 약 2만 5천개 정도의 캐스크가 채워지게 됩니다. 5년이면 숙성창고가 모두 채워지겠네요. 그렇다면, 새로 스피릿을 채우는 만큼 캐스크를 빼야겠죠. 숙성창고를 무제한으로 늘릴 수는 없으니까요.

0_image001.jpg 글렌알라키 증류소의 증류기

만약 이 물량을 모두 싱글몰트로 출하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가격방어가 안 될 겁니다. (물론, 글렌알라키 증류소는 현재 품질관리를 이유로 생산량을 25%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년 2% 증발으로 12년동안 숙성했다고 하면 약 20% 정도의 손실이 생기니, 연간 700만 병을 출하해야 한다는 거죠. 음.. 만약 하나의 증류소에서 이 정도의 제품을 낸다면 스카치 전체로는 어떨까요?


이는 특히 블렌디드 위스키에 원액을 공급하는 디아지오와 페르노리카, 듀어스의 증류소에서 더욱 도드라집니다. 위스키 증류소는 기본적으로 장치 산업이고, 자동화된 공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생산을 줄이면 줄일수록 단가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그럼 더더욱 줄일 이유가 없죠. 이러한 증류소들의 벌크 위스키들을 대부분 블렌디드 위스키의 원액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블렌디드 위스키에 완벽히 모두 사용되는 것은 아니죠. 마스터블렌더가 맛과 향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원액의 소모량이 변동되고, 필연적으로 잉여 원액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 원액만 해도 수백, 수천 캐스크에 달하죠.

이 수백, 수천 개의 캐스크들을 증류소에서 일일히 테이스팅하고, 수백 개가 넘는 독립병입자들과 컨택해 샘플을 테이스팅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캐스크들은 몇 개씩 묶여 벌크 딜로 판매됩니다.

forklift1-e1755264045478.jpg?ssl=1 지게차로 캐스크꺼내고 테이스팅하고 다시올려놓고 지게차로 캐스크꺼내고 테이스팅하고 다시올려놓고 지게차로 캐스크꺼내고 테이스팅하고 다시올려놓고

이 벌크 딜을 인수하는 주체가 바로 캐스크 브로커들입니다. 증류소들은 굳이 수십, 수백 명의 독립병입자와 직접 협상하기보다는 1~2명의 캐스크 브로커들에게 원액을 판매하는 것을 ‘당연히‘ 선호합니다. 증류소마다 원액을 직접 공급받는 브로커가 있죠. 예를 들면, 브로커 A는 블레어 아솔, 링크우드를 공급받고, 브로커B는 밀튼더프, 글렌버기를 공급받는 식이죠.


편의상, 원액을 직접 공급받는 브로커를 ’퍼스트파티 브로커‘ 라고 칭하겠습니다 이 경우에, A는 블레어 아솔과 링크우드 원액에 대해서는 퍼스트파티지만, 밀튼더프나 글렌버기에 관해서는 세컨드 내지 서드 파티 브로커이겠지요

이 퍼스트파티 브로커는 자신에게 할당받은 원액을 여러 블렌딩 팀에 공급합니다. 예를 들면, 쿨일라 원액을 대량으로 공급받아 블렌딩하는 ACEO가 그런 블렌딩팀이겠지요. 뭐 그뿐만 아니라 여러 블렌디드 위스키들을 만드는 블렌딩팀이 포함될 겁니다. 우리 곁의 “특급양주” 라고 하는, 뭐 패스포트나, 골든블루나, 그런 것들도 이제 블렌딩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거죠. 이 블렌딩팀 또한 남는 원액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683afaaafc.png 아! 달콤쌉싸름했던 특급양주의 추억이여!


이러한 고정적인 고객인 블렌딩팀에 원액을 공급한 뒤 남는 원액, 그리고 블렌딩팀에서 나온 잔여 원액이 자그마한 벌크 딜로 나오게 됩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같은 원액을 여러 캐스크에 나눠 담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기 때문에, 각 캐스크에서 숙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원액 상태로 거래되게 되죠. 이 경우에는 각 캐스크를 테이스팅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한번 섞였던 원액을 캐스크에 나누어 담은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캐스크별 차이를 느끼기가 힘들기 떄문이죠. 보통, 증류소나 스펙, 가격을 보고 구매하고는 합니다. 이렇게 산 원액들을 독립병입자의 재량으로 캐스크 숙성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 이후, 다른 독립병입자에게 판매하거나, 자신이 보틀링을 진행하거나 하죠.

KakaoTalk_20251026_154505759.png Whitlaw(하이랜드 파크) 를 보시면, 도수가 거진 비슷합니다. 원래는 하나였다는 거죠..


이런 원액들은 보통 바로 제품으로 출하하기는 힘든 경우인 저숙성 원액들이 대부분입니다. 고숙성 원액들은 이런 벌크딜로 잘 나오지 않죠.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마시는 12~18년급 싱글캐스크 제품은 어떨까요? 벌크딜로 간간히 나오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12년급 블렌디드를 만들고 남은 원액이라던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구매 시점에서의 스펙으로도 시장성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13년 내지는 14년 정도로 숙성된 위스키라면 캐스크 구매 후 바로 병입해 판매할 수 있겠죠. 이렇기 때문에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입니다. 구매자 입장에서도 선뜻 사기 부담스럽죠. 그래서 이런 가격대의 원액들은 ‘샘플’ 을 들고 영업을 하곤 합니다. 바로 이 단계에서 샘플 테이스팅을 해 볼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여기서 앞서 그 이론이 맞는 부분이 생깁니다. 이 샘플을 받아보는 순서에 관한 것이죠. 영업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단골 고객에게, 지금까지 많이 사 왔고 앞으로도 잘 살 듯한 고객에게 먼저 샘플을 제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샘플에 접근할 수 있는지’ 의 여부가 중요하죠. 이 과정에서 개인적 친분, 거래량 등이 들어갈 요소가 있습니다. 거래량이 적을수록, 이전에 샘플 테이스팅만 하고 구매를 하지 않은 전적이 많을수록 후순위로 밀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맛없는 원액’ 을 받는다는 원액은 아닙니다. 후순위로 떨어질지언정, 마셔보지 않고 병입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IMG_0006-scaled.jpeg 요런 200밀리 병에 담겨서 오기도 하고 그럽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세 독립병입자가 있다고 칩시다. 독일의 K사, 대만의 T사, 한국의 W사. 만약 샘플을 받아본다면, 독일의 K사가 1번, 대만의 T사가 2번, 그리고 한국의 W사가 3번이겠지요. 1번과 2번이 다소 과할지라도 진한 원액을 셀렉팅해 가져가겠지만, 애초에 W사가 선호하는 원액은 캐스크의 영향이 과도하지 않은 원액이기 때문에 원하는 원액을 셀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셔 본 뒤’ 선택해 구매하기 대문에 누군가한테는 맛있는 원액이, 누군가에게는 맛없을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죠. 물론 마셔보지 않고도 살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좋은 가격에 좋은 스펙의 매물이 나온다면,그 매물을 놓치지 않으려면 남이 채가기 전에 재빨리 구매해야겠죠. 샘플을 받아보는 동안 누군가가 채간다면 그 샘플이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30년 이상급의, 누가 봐도 맛있을 만한 원액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이 경우에는 의외로 영업이 필요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프링뱅크 25년짜리 캐스크가 있다면 그걸 굳이 샘플을 여기저기 보내면서 영업해야 할까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샘플을 받아 볼 때도 유료로 받아 보아야 합니다. 그 정도 스펙의 캐스크가 되면, 샘플 한 병의 가격만 해도 수천 파운드가 될 때가 있죠. 예약금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약금을 걸고 샘플을 받은 뒤, 구매하지 않곘다고 하면 예약금을 포기해야 하는 식이죠. 이런 매물들은 철저하게 판매자 우위의 시장입니다. 고숙성 위스키를 여러 병입주체가 조인트 보틀링 형식으로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너무 비싸니까요..

KakaoTalk_20251026_154901272.png 이런 것들... 오금떨리게 비쌉니다

정리하자면, 위스키 독립병입의 매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고, 각 분류에 따라서 테이스팅을 하지 않기도, 하기도, 비싼 돈을 내고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 저마다의 합리적인 이유로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샘플 접근에 대한 우선권은 있을지 몰라도, ‘짬처리’ 라고 일방적으로 부르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 독립병입자에 대한 단정을 섣불리 내리기보다는 여러 보틀을 마셔 보고, 전반적인 성향을 파악해 자신과 맞는 병입자의 픽을 골라 보는 것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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