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행복한 3가지 이유.

아빠, 농부, 친구

by han


‘행복’을 사전에서 찾으면 생활 속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고 나와 있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본 다면 난 서슴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절대가치로 따져서 매 순간 100% 행복한 것은 아니다. 절대 행복은 신의 영역이다. 품고 있는 욕망과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주관적 생각으론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남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여러 번의 무모한 결단을 했다. 10여 년 전, 연고가 없는 이곳 육지의 섬으로 불리는 영양으로 왔다. 농부가 되면서 바쁘고 정신적으로 고단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간이 지나며 듬성듬성 걸려오던 전화도 언제부턴가 더는 오지 않았다. 사업상, 폰에 저장돼있던 국내외 수많은 인맥은 의미를 잃어버린 단순한 숫자에 불과 해졌다. 아쉽다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폴더 폰을 스마트 폰으로 바꾸면서 이젠 관계없다는 생각에 옮기지 않아 깃털처럼 가볍게 잊혔다.


낮에는 밭일을 하면서 오래전 읽었던 인문학 책을 곱씹었고. 도시와 달리 불빛 하나 없는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는 아이들과 놀아 줬다. 아이들이 커서 서울로 떠나자 거처를 농막으로 옮겼다. 짐들은 버리고 나눠줬다. 현재, 외형적으로 내게 남은 것이라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작은 농막 겸 작업실, 트랙터, 화물차, 승용차 그리고 폰에 저장된 20여 개 남짓한 전화번호다. 그 저장된 연락처마저도 농협, 면사무소, 보건소, 이장 등이다. 닥치는 대로 버리고 비우다 보니 미니 멀 라이프가 아니라 그 보다 더한 마이크로 라이프가 돼버렸다. 수시로 문 잠거 놓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어찌 보면, 지금 호사스럽게 누리는 행복은 비우고 버리는 것에서 시작했다. 난 여기서 3가지의 큰 행복을 얻었다.


20190629_110651.jpg 6. 29일 / 부슬부슬 비 오는 날 치과를 다녀오다 바닷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첫째는 아이들이다.

강요와 집착에 가까운 공부에 대한 욕심은 애초에 버렸지만 아빠가 필요할 때 아이들 옆에 있었다. 덕분에 두 아이는 밝고 용감하게 자랐다. 그 예로, 인문학을 달가워하지 않던 녀석이 군대에서 릴케와 헤르만 헷세에 빠지고 보바리 부인의 허영을 이야기했다. 자신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겠다는 편지도 아빠에게 보냈다. 23살, 웹툰을 한다고 대학을 가지 않은 아들이 드디어 학문의 제왕인 인문학의 필요성을 알고 읽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학벌이라는 사소하고 허름한 장벽이 아니라 그 너머 홀로 걸어가야 할 삶을 바라본 것이다. 애쓴 보람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행복하다.


둘째는 농사다.

내가 콩 농사를 많이 짓는 이유는 별거 없다. 오래도록 몸을 움직이며 경제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다르게 표현하면 땀 흘리며 돈을 계속 벌고 싶어서다. 콩은 대부분 기계로 작업할 수 있고 일 년에 100일도 채일 하지 않는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시간이 여유롭다. 그러나 적지 않은 평수의 밭 장만을 위해 단순 작업을 반복한다는 것 또한 몹시 지루한 일임은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몸보다 머리가 먼저 지쳐버린다. 다행스럽게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문제가 해결됐다. 손발은 밭일하고 머리로는 글을 쓰고 틈틈이 수첩을 꺼내 적는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항상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즐겁게 일한다. 그래서 농부는 행복하다.


셋째는 새로운 친구다.

이제 아빠로서의 임무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나만의 삶을 가아야 하는 출발선에 섰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어느새 오십 대 중반 하고도 1년이 넘어버렸다. 정작 무서운 건 피해 갈 수 없는 세월이 아니다. 나름 것 최대한 저항은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고방식이 완고해졌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러던 중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좋아요’가 눌러졌고 댓글이 달렸다. 이것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20대, 30대, 40대로 다양하다는 데 있다. 나이를 떠나 어울리고 싶고 썰렁하게 비워 놓은 내 폰 안에 공간을 그들의 닉네임으로 채우고 싶지만, 그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은 현실이 됐다. 며칠 전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키위 작가가 나의 글을 보고 전화를 했다. 대화중에 간간이 장막을 치는 나의 완고함이 스스로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내 탓이오' 하면서 가슴까지 치지는 않았지만 반성은 했다. 그 키위 작가에게서 배운 대로 사람을 보다 겸손하게 많이 만나야겠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래도 한참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사람은 위아래가 없다. 나이를 불문하고 수평적 관계로 대해야 한다. 난 윗사람이 아닌 먼저 지나온 사람일 뿐이다. 그들이 배려하는 것을 권리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럼, 지금 유럽을 떠돌고 있을 아무개, 뉴질랜드의 맑은 키위, 멋쟁이 고래, 울다 웃는 화가, 잠꾸러기 등 이런 작가들 이외에도 가면 갈수록 좋은 친구가 많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친구인 난 행복하다.




[이 글을 통해 키위 작가에게,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지내다 보면 여러 젊은 작가들을 만날 수도 있을 텐데... 카운터 앞에 기다리다 커피 날라주는 것은 그렇다 쳐도 커피값+ 밥값 엄청나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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