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다분한 남자.
미술, 추상화 기법 중에 ‘마블링’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물과 기름의 이질적인 성질을 이용해, 여러 색의 물감 흐름 그대로 화폭에 담는 기법이다. 마블링 화는 화가의 내면세계를 잘 표현해 준다. 사람의 말과 행동도 그렇다. 서로 섞일 수 없는 두 존재, 경험된 감성과 학습된 이성이 이질적으로 엉켜서 만든 결정 물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내 눈에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로 보인다.
내가 수시로 방문하는 브런치 책방의 글들도 다르지 않다. ‘삶‘이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도 같은 글은 찾아볼 수없다. 글 속에 담담, 슬픔, 기쁨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나타나지만, 글을 쓴 작가마다 차별화된 고유의 느낌이 있다. 공통점이라면, 자신들의 고단한 삶에서 생긴 상처를 글로 쓸 수 있는 감성과 필력이라는 색깔의 조합을 가졌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남보다 선명한 색깔을 가졌기에 조금 더 바쁘고 조금 더 풍요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현재 직장인이든 전업주부든 프리랜서든 상관없다. 미래에는, 그들 중에 이름 있는 작가, 문화평론가, 강연자 등이 나올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각자가 지닌 개성 넘치는 색깔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 특별한 재능이다.
더욱이 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는 비슷한 것보다 독창적인 것이 낫다. 각자가 지닌 개성 있는 색깔이 그 역할을 한다. 색깔은 많으면 많을수록, 화가가 마블링 화를 화폭에 담는 것처럼, 그때그때 새롭고 차별화된 혁신적인 것들을 내보인다. 그러기 위해, 사람은 성장하면서 많은 직간접 경험을 통해 색깔을 습득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색깔은 오로지 시험과 관련된 것이다. 남들과 똑같은 색깔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남들과 똑같다. 대입을 시작으로 해서 공무원, 고시, 교사, 기업 공채가 전부다. 어떻게 된 게, 죄다 어려서부터 차근차근 학교 필기시험부터 통과해야 하는 것들뿐이다.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다른 일을 찾아 즐겁게 하면 된다. 문제는 가지고 있는 부족한 색깔의 한계로 인해 다른 길은 생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고작해야 다시 시험에 도전하는 것밖에 없다. 아는 게 그것뿐이라서 그렇다.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창의적 사고력의 바탕을 둔 행동의 실천을 끌어낼 수 없다. 결국, 시험에만 매달리다 아까운 청춘만 보낸다.
그렇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하면 된다. 알바를 해서라도 하루 세끼 먹고 잠잘 곳이 있다면, 먼저 자기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색을 찾아내고 보충해야 한다. 평생을 남에게 끌려가며 뒷전에서 푸념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마흔 중반이 넘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내가 젊은 당신들이라면 오래전에 그랬듯이 다시 할 것이다. 왜냐면, 세상과 주변을 원망하기 전에 한 번뿐인 내 인생은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훗날 극명하게 갈린다. 지금은 그들이 부러울지 몰라도 훗날엔 그들이 당신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자면 이를 악물고 마음속에선 악다구니를 쓰더라도 겉으론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끝까지 버텨야 한다. 세상은 넉넉하다. 모두가 나눠 가져도 충분할 만큼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다. 가슴을 열고,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 세상에 살면서, 주변에서 알려준 몇 가지 색깔을 가지고 세상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난 내 아이들에게도 주입식 학습보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많은 색깔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어리고 서울에 살 때였다. 내가 쓰던 작은 방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만든 액자로 된 세계지도가 걸려있었다. 상당히 커서 작은 방 한 면을 다 차지할 정도였다. 난 그 지도를 신줏단지처럼 아꼈다.
수시로 아이들과 함께 그 지도를 보면서 여행 중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태국에서 밤길을 걷다 주인과 함께 구걸하는 새끼 코끼리와 부딪친 일, 인도에서 검정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부자를 만난 일, 영국에서 유령 나올법한 오래된 장원서 묶었던 일 등을 과장된 몸짓을 섞어 이야기해주었다. 그럼 아이들은 배를 잡고 방바닥을 뒹굴며 깔깔거렸다. 심지어 딸아이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아빠가 다녀온 도시마다 낙서하듯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딸아이를 볼 때마다 심근경색에 호흡곤란까지 겪는 아빠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풍습과 음식 이야기로 옮겨 갔다.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라는 것이다. 난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고 색깔 다분한 남자다. 아이들이 아빠인 나의 색깔을 모두 가져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내 아이들은 새로운 색깔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가지고 풍요롭게 살아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난 아직도 궁금하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색깔을 품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