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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Nov 15. 2020

별이 된  그녀에게 바치는 추도사



그에게 있어 최악의 인물은 싫다고 떠난 도, 그저 그런 그의 글에 문학과 형식의 잣대를 들는 잘난 자들도 아니다. 언젠가 글에서 언급한 알퐁스 도데(1840~1897)다. 만나지 말아야 했다. 웃음 속에 교활함을 감추고 뻔뻔하게 살아가는 그였다. 생의 전반을 지긋지긋하게 간섭했다. 순수함과 교활함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데는 1885년 '별'이란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12년 후 지병인 매독으로 사망했다. 죽어서 어느 자리의 별이 됐는지는 문학자 소관이라 잘 모르겠다. 까마득한 어린 날, 툭하면 집을 나와 하늘을 바라보던 소년에게 도데의 별은 위로와 희망을 주고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회색의 머리칼을 한 지금도 별을 바라본다. 


그땐 소원을 빌면 들어주고, 착하게 살다 죽으면 별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소원을 빌어도 들어주지 않자, 소년은 별을 미워했다. 요즘은 서로가 무심하게 올려보고 내려본다. 성인이 되고 나선, 마냥 착하게 산다고 별이 되 않는다는 것 알았다.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다. 착한 사람은 별이 아니라 천국으로 간다는 것이 정설이다. 별은 갈 곳 없는 가여운 영혼 채워다. 외로웠던 존재들이 모여 사귀빛을 주고받는 것이 별무리다.


지난주에 또 하나가 별이 되어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그가 그녀와 동료들에 관해 쓰고 나서다. 〈비좁은 틀 속에 욱여넣어진 청춘〉이란, 무급휴직을 강요당한 항공사 승무원을 빗대어 청춘의 절망을 쓴 글이다. 27살 앳된 그녀는 재벌도, 연예인도 아니었다.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녀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게 단신으로 처리됐다. 관심 가질 것도 없이,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공항 앞에 사는 그와는 가까운 곳에 살았다. 그 거리를 오갔고, 그가 자주 가는 카페도 들렸을 것이다. 어쩜 한 번쯤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였던 깔끔하고 세련된 커리우먼의 모습과 뉴스에 보도된 그녀의 사정은 달랐다. 실제로 봐도, 그녀들 삶의 모습은 생각과 다르다.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허겁지겁 산다. 불규칙한 비행시간에 맞춰 뛰어야 했고, 추운 새벽 택시비 아끼려고 공항까지 걸어갔다. 캐리어 위에 올려놓은 또 다른 작은 가방엔 간식으로 먹을 과자 봉지를 잔뜩 쑤셔 넣고 다녔다.


보도에선, 코로나로 인해 강제 무급휴직을 당한 27세 된 항공 승무원이 1억 5천만 원 전세 대출 원금상환으로 고민했다는 앞뒤 잘라버린 기사로 한 인간의 죽음을 결론지었다. 기사 밑에 달린 댓글도 회장과 연예인이 죽었을 때만치 호의적이지 않다. 알바라도 하지, 2030은 죽을 것 같다, 40대는 더 죽겠다, 1억 5천만 원씩 대출을 받아, 세금이 너무 많다, 뭐 이런 식의 댓글이다. 죽음의 존엄은 사라지고 참을 수 없는 시샘과 이해타산만 남았다. 그녀가 유언장에 남긴 말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내 장기는 기증해달라. 세상에 잘 왔다가 편안한 안식처로 떠난다'였다.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아름다운 문장은 그렇게 묻혔다.


그녀의 아버지는 2년 전에 사망했다. 집안의 형편은 아버지가 있을 때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방에서 살았고 승무원을 꿈꿨다. 본인이 바라던 승무원이 . 처음으로 깨끗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그녀가 실수했다면 했지 죄 짓지 않았다. 1억 5천의 전세 보증금은 은행에서 가져갈 것이고 머물렀던 집은 타인이 쓸 것이다. 학자금 대출이 있다면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면 된다. 이것은 국가의 의무다. 문제는 죽음의 원인을 코로나와 그녀 본인에게 돌리는 사회에 있다. 코로나가 없을 땐 모든 기업이 잘 돌아가고 누구나 행복했던 것처럼 말한다. 물타기 하는 것인지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녀의 죽음의 원인은 악랄하게 자본화된 사회 시스템에 있다. 돈을 빌리는 순간 이자가 발생한다. 이자에는 회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위험 비용이 포함된다. 순전히 돈에 대해서다. 사람에 대한 비용이 아님에도 사람과 돈을 동등한 가치로 평가 환산한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돈이 없으면 신용이 없다고 말한다. 하늘과 인간에 대한 신용은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되묻고 싶다. 자본화된 시스템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무지 막지 한 집행자 역할을 자처한다. 27살밖에 안 된 그녀를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철저히 자본화된 사회는 그것이 율법이라도 되는 것 마냥 당연시한다.


더는 지탱할 수 없었다. 승객에겐 미소로 대했지만 정작 자신에겐 가혹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후에 장기를 기증한다는 유언으로 생명을 남기고 갔다. 그녀가 꼭 그런 선택을 하도록 재촉했던 시스템 속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글을 쓰고 있은 그처럼 한 줌의 부끄러움과 망설임도 없이 계속 웃고 떠들며 뻔뻔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가 글을 마치고 농막 문을 열고 나가 밤하늘을 무심히 쳐다봤다. 오늘따라 별들이 어릿어릿하고 뿌옇게 보였다.




타이틀 이미지/ 벤 고아는 눈이 영혼의 창이라고 생각한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수채화에서 분노, 슬픔, 혼란 등의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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