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내향형 사람들을 위한 미식원정대, <내향원>의 방장 마왕입니다.
제가 이 모임을 정식으로 소개하는 건 처음인 거 같네요. 정모에서 뵌 분들도 있고 아직 뵙지 못한 분들도 있겠습니다. <내향원>을 만든 이유나 서사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왠지 모임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면 시쳇말로 ‘진지충’이나 ‘설명충’ 같아 보일까 봐 이렇게 글로 씁니다. 멋없잖아요. 설명충은.
‘내가 언제 이 모임을 만들었더라?’ 하고 보니까 22년 6월 25일에 만들었더라고요. 어언 150일이 다 되어가네요. 다들 소모임이나, 카톡방에 유입되는 사람들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동안 가입자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엄청’이라는 말 대신 ‘폭발적’이라는 표현을 써보았다가 괜히 들떠있는 사람 같아 보여서 지웠습니다. 멋없잖아요. 그딴 건.) 이렇게 단기간에 규모가 커지는 걸 전문용어로 ‘블리츠 스케일링’이라고 한다는데, 저는 좀 더 교양 있는 ‘떡상’이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아무튼 <내향원>의 떡상을 보고 혹자는 제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 ‘모가지가 뻣뻣해졌다’라며 놀리기도 하는데, 사실 저는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 큽니다. 원래 이맘때 즈음 서른 명 정도 되겠거니 하고 예상했거든요. 저도 외부 활동에 쉽게 에너지가 소모되어버리고 마는 이른바 ‘내향인’ 이라서 그런지 덜컥 겁부터 납니다. '모임이 이렇게 판이 커지는 게 맞는 걸까?', '내가 과연 모임장을 계속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이요.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외로운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 또한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낍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아닌데?’ 하는 분도 있겠지만, 글쎄요…. ‘더’와 ‘덜’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안 느낀다거나 못 느낀다는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삶은 결국 신체를 소모하기 때문에 인생의 기본값은 고통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외로움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언젠가 우린 한없이 외로워질 존재가 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엔 외로움이 기본값으로 자리하고 있는 거죠.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왜 심심해서 어플을 뒤적이고, 모임에 가입하고,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움을 느끼는지를요. 인간이 만족을 찾아 헤매는 이유를 잘게 쪼개 보면 어딘가에 외로움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게 모든 행동의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마치 음식 영양성분에 있는 탄수화물처럼 몇 퍼센트 함량으로 꼭 들어있는 것 같아요.
외로움을 느낀다는 게, 혼자 있는 시간을 싫어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는 것도 소모전이잖아요. 눈을 감고 상상해 보세요. 친구나 애인이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계속 자기 집으로 안 돌아간다면? 혹은 가족이나 친척들이랑 아침부터 저녁까지 쭉 같이 붙어있는다면? 이런 상상을 하면 어떠신가요? 마음이 편안하신가요? 아마 좀 지칠 겁니다. 특히 내향형 인간들은 그런 것에 더 피곤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건 사랑하곤 관계없어요. 사랑하는 사람과도 가끔 떨어져 있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가족들과 싸운 뒤 잠깐 집을 나가고 싶다든지,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와서 하루 정도는 혼자 쉬고 싶다든지, 친한 동료 이야기에 열심히 리액션해 주다가 가끔 현타가 온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이런 게 우리에게 이따금 외로움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겁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둘 시간이 필요해요. (데이트하다가 갑자기 애인이 ‘됐어, 나 집에 갈래’하는 건 예외입니다. 이거는 그냥 내버려 두면 재해가 되어 돌아올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도 종종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내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있는 시간은 심력 소모가 두말할 것도 없겠죠. 갑을 관계에 있는 상대와 술자리, 어색한 친척들과 함께하는 식사, 불쾌한 언행을 서슴없이 하는 선배의 옆자리…. 정말 생각만 해도 진이 빠집니다.
사람은 지치기 마련입니다. 타인과 너무 떨어져서 외로움에 지치기도 하고, 너무 가까워서 피곤함에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필요할 때 가까이 두었다가, 피곤할 때 적당히 멀어지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게 내 입맛대로 할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잖아요. 상대방에게 너무 이기적으로 구는 것 같은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부담 없는 사람과 밥 한 끼, 술 한잔하고 싶은데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 봐도 부를 사람이 없는 경우요. 이 사람은 불편해서 싫고, 저 사람은 나를 부담스러워할 거 같고, 얘는 밥을 먹었을 것 같고, 쟤는 지금 바쁠 것 같고, 용기 내서 연락했는데 거절당하면 민망할 것 같고…. 그냥 서로 식탁에 마주 앉고 싶은 것뿐인데 참 많은 걱정이 우릴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아무나 불러내서 밥 먹자고 하기엔 우리 내향인들이 그리 넉살 좋은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요.
우린 인간관계에 있어서 늘 이런 걱정이 앞서는, 다소 물렁한 영혼의 소유자들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런 마음 때문에 <내향원>을 열었던 것 같아요. 적당히 낯선 분위기로, 서로의 선을 쭈뼛 맴돌다가, 도란도란 앉아서 밥 먹고, 부담 없이 헤어지고 싶어서요. 메뉴를 여러 개 시키고 싶어서, 혼자 밥 먹기가 외로워서, 배달 음식은 질려서, 다양한 맛집 정보를 얻고 싶어서…. 등등 각자 이유를 안고 가입했겠지만, 결국 목적은 '같이 밥을 먹고 싶어서'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모임에서 ‘너무 조용하니까 어색하다’, ‘괜히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다.’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밥을 먹는 건 충전을 하는 시간인데, 어떤 때는 불편한 대접을 위해서 에너지를 더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이렇게 무리하지 않으며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셔도 되고요, 할 말이 없다면 그냥 식사를 즐기시면 됩니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핸드폰 보시면서 드셔도 되고요.
저는 내향인들의 특징은 ‘외로움을 소중히 대하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의 외로움을 빼앗아 가지 않을 겁니다. 여긴 대단한 맛집을 찾아가거나, 빼어난 미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그냥, 비슷한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끼리 둘러앉은 식사 자리예요. 여기 오실 때만이라도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오셨으면 좋겠어요. (돈은 가져오셔야 돼요. 음식값은 뿜빠이라.)
너무 외롭거나 혹은 적당한 외로움이 필요하거나, 그럴 때 외로움을 좀 덜어내거나 보태면서 조절하는 걸 저는 외로움을 ‘달랜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달랜다는 표현… 이 얼마나 내향인과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까. 무언가를 차분하고 다정하게 가라앉히는 모습이 꼭 그렇게 느껴져요. 다들 오셔서 각자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아가 내 식탁 앞에 앉은 이의 외로움도 달래줄 수 있다면 좋고요. 항상 맛있고 편안한 식탁이 여러분과 함께하길 바랍니다.
근데 왜 이걸 소모임이 아니라 브런치에다 쓰냐고요? 그냥요. 간지 작살나잖아요. 이런 건.
방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