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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Apr 27. 2022

헤어질 거라면 목요일 밤이 좋겠어요

우리 이별할 거라면 오늘 말고 목요일 밤에 헤어져요. 오늘은 금요일이잖아요. 그러니까, 다음 주 목요일 어때요? 그날은 바쁘신가요? 헤어질 거라면 목요일 밤, 그게 좋겠어요.


네? 왜냐고요? 그냥요. 아니, 완전히 그냥이라는 건 아니고요, 지윤 씨랑 헤어지고 돌아가면 저는 오늘부터 엄청 슬프고 괴로워지잖아요. 집에 가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다가 울컥할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 집 가는 버스에서부터 울지도 모르고요. 운다는 건 마음이 축축하다는 뜻이고 축축하면 무겁잖아요. 그렇게 무겁고 축축하게 젖은 마음을 밤새 껴안고 있다가 주말을 맞이하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으으 그러면 왠지 다음날에도 한테서 꿉꿉한 냄새가 날 것 같아.


괜히 하릴없이 집 앞 놀이터를 빙빙 배회한다거나,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볼까 망설인다거나 뭐 그런 이상 행동들도 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그거 아시죠? 시간은 남는데 갈 곳은 잃어버린 사람들 허망해 보이는 행동 같은 거요. 다들 외로움에 푹 절여진 사람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또 그거 아세요? 그렇다고 월요일에 헤어지는 것도 싫어요. 왜냐뇨? 슬퍼할 새도 없이 바로 일해야 되잖아요. 바쁜 걸로 잊는다고요? 에이. 그게 어떻게 잊는 거예요 이리저리 휩쓸려간 거지. 저한테 슬픔은요, 상하지 않게 잘 담아뒀다가 한 번씩 꺼내보고 싶은 거예요. 잊혀진다는 건 이제 더 이상 꺼내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고요.


아니, 지윤 씨 제가 이상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요... 그냥 지윤 씨랑 헤어지고 나면 제가 하고 싶은 건 이별을 슬퍼하는 일이지 휩쓸려서 떠내려 보내는 일은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지윤 씨랑 헤어지면 저는 금요일 하루 정도는 시간이 필요해요. 저는요, 금요일이 제일 바쁜 요일 같아요. 한 주를 되짚어 보기도 하고 주말에 뭐 할지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금요일에 출근하면 다음 주 계획도 작성하고요, 이번 주에 미처 못 한 일들도 마무리해요. 사실 못했다는 건 핑계고 대부분 귀찮아서 미뤄놨던 것들이지만요.


어디 일만 바쁜가요? 저녁에 술 약속이 있지는 않았는지, 혹은 이번 주말에 누굴 만나기로 했었는지 괜히 달력과 카톡을 뒤적거려 보기도 하고요. 제가 가끔씩 미리 잡아놓은 약속을 까먹기도 하거든요. 아 참, 그런데 금요일에 부장놈이 가끔 ‘다들 오늘 저녁 괜찮지?’ 할 때가 있어요 그날은 진짜 어떻게든 없는 약속이라도 만들어 내요, 회사 다니면서 순발력만 는 거 같다니까요? 아니 회식은 목요일 저녁이 국룰 아니에요? 어? 방금 웃었죠? 왜 웃어요 지윤 씨는 그런 적 없으세요?


저는 금요일에 대부분 친구들 만나서 밥도 먹고 약속도 잡고 그래요. 만약에 약속이 없다면 동네 편의점에 앉아서 4캔에 만원 하는 수입맥주들을 까 기도 하고요. 아, 안주는 그냥 과자나 마른안주로 사요, 생라 부숴 먹을 때도 있고요. 지윤 씨도 그때 저랑 한강에서 같이 생라면 먹었잖아요? 기억나시죠?


생각해보니 지윤 씨도 참 너무하시네. 우리 원래 내일도 보기로 했었잖아요. 토요일에 종로 제가 아는 마라탕 집 같이 가기로 했던 거요. 저는 저번에 지윤 씨가 매운 거 잘 못 먹는다고 해서 혼자 먼저 가서 먹어봤거든요. 아, 아니요 일부러 간 건 아니고요 마침 그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간 거예요.


아무튼 그래서 지금 마라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희 집 들어가는 골목에도 보면 마라탕 집이 하나 있거든요. 제가 지윤 씨랑 마라탕 먹으러 가기로 하고 그 골목 지나다니면서, 간판 볼 때마다 지윤 씨 생각했거든요? 근데 또 지윤 씨랑 헤어지면 이제는 마라탕 집 간판 볼 때마다 울적하게 되잖아요.


아? 네... 뭐, 그 골목 말고 다른 길로 가면 되긴 하는데요, 근데 제 말은 이렇게 불쑥불쑥 지윤 씨가 떠오를 일들이 엄청 많을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매번 다른 골목으로 돌아가겠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목요일 밤에 헤어지는 게 어떨까요? 제가 안 헤어지겠다는 게 아니라요. 그냥 마음을 잠깐 널어둘 시간만 좀 달라는 거예요.


네? 그래도 안된다고요? 알아요...  알고 있었어요 사실. 지윤 씨가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는 거요. 그런 게 왠지 지윤 씨 답잖아요. 월요일에 헤어지든 일요일에 헤어지든 헤어지기 좋은 날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헤어지기 싫어서 한번 얘기해 봤어요.


그럼요, 혹시 작별인사로 한번 안아보고 가는 건 요? 제가 이제부터 저기 정류장까지 걸어갈 건데 진짜 절대 안 돌아보고 걸어갈게요. 지금 지윤 씨도 울 것 같은 표정이고, 저도 그렇잖아요. 근데 서로 우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을 거 같아서요. 저만 그래요?. 지윤 씨는 안 그래요?


진짜 한 번만 안고 가요 우리. 안고있을 동안만 딱 울고 헤어져요 우리. 그럼 저도 절대 더 안 조르고 그냥 갈게요. 뭐라고요? 아... 네, 알겠어요...


잘 가요 지윤 씨.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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