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에서 거제행 승차홈에 앉아 오도카니 버스를 기다리다가, 광고판에 '거제로 올 거제'라는 귀여운 지역 홍보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이번 설에는 고향에 내려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말 같기도 하고, 엄마가 상경한 딸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합니다. 올 거제라는 말의 속 뜻은 너 올 거냐고 묻는 말이 아니라, 너를 보고 싶다고 하는 고백에 가까운 말일 것입니다.
고백은 나의 무르고 연한 곳을 상대방에게 숨김없이 보여줘야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활짝 열리는 순간은 우리가 한없이 약하고 상처받기 쉬워지는 때고요. 그래서 가끔 '거제로 올 거제'처럼 에둘러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이나 표정만으로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얼굴을 마주하고 해야 되는 고백들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사과하고 싶거나, 끝내 사랑하고 싶은 일이 그렇습니다. 주로 오랫동안 켜켜이 쌓아온 마음을 꺼내야 할 때 그렇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 먼 거제로 온 이유도 바로 그런 고백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처럼 나약한 사람은 해묵은 마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으므로 거제의 얼굴을 마주하고 어떤 고백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이곳 시장에 들러 유명한 국밥을 한술 뜨기도 하고, 독봉산 자락에서 아직 물이 덜 든 단풍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좁은 해안 골목에 있는 고양이들과 놀다가, 정원 같은 카페에 들러서 조약돌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케이크도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한 해안을 평화롭게 거닐어 보기도 했고요.
방은 하루에 4만 원 밖에 하지 않는 작은 민박집에서 묵었습니다. 한 칸짜리 방이었지만 빛이 썩 잘 들고 바닥이 따뜻해서 한 몸 뉘기에 더할 나위 없었어요. 바다가 가까워서 밤바다를 보러 나가기에도 좋았고요. 이 여행의 모든 게 당신과 나의 몸과 마음이 가난하던 시절 같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헤어지던 당신이 아직 울음도 제대로 그치지 못한 채, 제게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당신은 겁이 많지요?'라고 물어보신 그 슬픔을 기억합니다. 제 뺨과 눈썹을 조심스럽게 만지던 손길도 기억하고요.
고백하자면, 저는 꼭 행복이 아니라 그때의 애달픔 같은 것을 먹어가며 어찌어찌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바라시던 모습과 달리 저는 아직도 사랑 하나를 제대로 해내는 것을 두려워하여 늘 다시 외로움으로 도망치는 이런 볼품없는 어른이 되었고요. 대체 당신은 어떤 힘으로 나를 그렇게 다정하게 사랑해 주셨었는지 아직도 저는 궁금하기만 합니다.
당신이 계신 곳은 늘 따뜻하신지요. 이곳은 이제 더 쌀쌀해질 것입니다. 그래도, 그리 머지않은 날에 봄이 오겠지요? 어느 따뜻해지는 날, 그때는 그리운 이와 함께 오겠습니다.
제 고백은 끝이에요. 사 온 음식이 식기 전에 얼른 좀 들어요. 술도 한 잔 하시고요. 당신도 짠. 나도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