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아침나절까지 화창하다가 저녁에는 비가 올 듯 흐리던 날의 일이었다. 그날은 당신을 아끼는 일이 마치 나를 아끼는 일처럼 느껴지던 날이었다. 슬프고 불안해하는 당신의 손을 감싸 쥐면, 내 상처 또한 보듬어지는 것 같았다. 나의 하염없이 연한 곳을 드러내면서 당신에게 다가가는 게, 덫에 걸린 짐승을 도와주고 싶어서 천천히 안심시키며 다가가는 일 같았다.
또 하루는 아침나절까지 흐리다가 저녁에는 비가 추적추적 오던 날의 일이었다. 그날은 당신을 저기 먼 길로 떠나보내는 마지막날이었다.작별의 슬픔에 우리가 가진 추억이나 사랑까지 떠내려 갈까 봐, 그러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거기서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비비면서 애써 행복한 일들을 떠올리려고 했다. 그때, 우리의 무수한 만남 중에서 내게 떠오른 기억은, 설렘이나 화 같은,들불처럼 번지던 감정의 순간이 아니라 나른하고 안온했던 순간들이었다.
나는 언젠가 또 같이 서로의 몸을 포개고 누워서, 시간이 우리의 곁을 빠르게 흘러가는 것도 까맣게 잊고서, 함께 소설이나 시 따위를 읽고 싶다고 했고, 당신은 꼭 그러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