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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Jul 23. 2024

그날 서촌

하루는 아침나절까지 화창하다가 저녁에는 비가 올 듯 흐리던 날의 일이었다. 그날은 당신을 아끼는 일이 마치 나를 아끼는 일처럼 느껴지던 날이었다. 슬프고 불안해하는 당신의 손을 감싸 쥐면, 내 상처 또한 보듬어지는 것 같았다. 나의 하염없이 연한 곳을 드러내면서 당신에게 다가가는 게, 덫에 걸린 짐승을 도와주고 싶어서 천천히 안심시키며 다가가는 일 같았다.




또 하루는 아침나절까지 흐리다가 저녁에는 비가 추적추적 오던 날의 일이었다. 그날은 당신을 저기 먼 길로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작별의 슬픔에 우리가 가진 추억이나 사랑까지 떠내려 갈까 봐, 그러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거기서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비비면서 애써 행복한 일들을 떠올리려고 . 그때, 우리의 무수한 만남 중에서 내게 떠오른 기억은, 설렘이나 화 같은, 들불처럼 번지던 감정 순간이 아니라 나른하고 안온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언젠가 또 같이 서로의 몸을 포개고 누워서, 시간이 우리의 곁을 빠르게 흘러가는 것도 까맣게 잊고서, 함께 소설이나 시 따위를 읽고 싶다고 했고, 당신은 꼭 그러자고 했다.


당신은 끝으로 오늘 꿈에서 만나자고 했고, 나는 꼭 그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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