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왕 Aug 21. 2024

아직, 당진

한 번은 봉사활동과 급식 지원 활동에 대해서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그것으로 사람이 적어도 ‘죽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을 ‘살 수 있다’는 말로 정정했다. 친구는 그거나 그거나 같은 말이 아니냐고 했고, 나는 ‘이 친구야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어떻게 그게 같은 말인가? 사람은 진짜 말을 곱게 할 줄 알아야 해’라고 받아쳤다가 X선비 소리를 들은 것은 덤이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X선비 같은 말이어서, 괜히 폼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X발.


‘선생님 여기다 차 대시면 안 돼요’라는 말과 ‘차 빼 이 새끼야’라는 말은 둘 다, 이곳에서 비켜달라는 말이지만,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네 생각을 한 말과, 내 생각을 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말은 '구십구 대 일'의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지어낸 법칙이니까 애써 검색해 볼 필요는 없다. ~를 향해서 말한 으로 마음의 99가 가고, 반대쪽에 1이 남는다는 뜻이다. 너를 위해서 해준 말은 그 마음의 99가 네게 갈 것이고, 나를 위해서 한 말은 99가 나한테 돌아온다는 뜻이다.


예쁘다, 잘했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상대방에게 해주는 말이므로 99가 상대에게 쌓이고, 내게도 조금은 그 마음이 남을 것이다. 이 새끼, 저 새끼, 병신, 쓰레기는 내 분을 풀기 위해서 한 말이니까 상대에게는 한 개가 가고, 내게는 아흔아홉 개의 마음들이 쌓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쌓인 것, 조금씩 다른 것들로 결국 나중에는 서로서로가 전혀 다른 인간이 될 것이라는 걸 믿는다. 대개 부드럽거나 긍정적인 말이 더 상대를 향해 있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글도 그렇게 써보고 말도 그렇게 해보려고 다짐한다. 물론 썩 오래가진 않는다. 좋은 말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나는 특히 그걸 못했다. 하지만 그게 먼 날에 쌓아 올릴 힘까지 의심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언젠가 내 덕으로 예쁘고 잘나고 고마운 사람이 될 것이고, 나는 오직 내 탓으로 험하고, 추하고, 염세적인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당신이 보시기에 내가 아름답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다면 그건 다 당신의 말 덕분이라고 하고 싶다.


덕마리의 허허벌판 위에 오직, 외딴 우리 집 하나에만 등을 켜두고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셨다. 누구를 좋아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의 마음은 보통 어떠한지를 물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루를 자고서 이튿날에는 서울로 왔다. 나는 서울의 저녁에 머무르면서, 마음은 아직 당진의 저녁에 두고왔다. 밤에는 일기를 썼다. 나는 당신을 떠올릴 때의 마음에 대해, 이제 더는 만나지 못해 슬퍼하는 마음이라고 썼다가, 이내 그것을 지우고 아직 보고 싶어 그리운 마음이라고 적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날 서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