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대만엘 다녀왔습니다. 출발 전부터 대만은 한국보다 더 덥고 습한 나라라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도착해 보니 과연 그 말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해도 쨍쨍하고 갑작스러운 비도 자주 오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어떻게든 몸이 조금 습해지고 더워지는 것은 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은 평생을 이런 환경에서 사셨을 테니 담담히 받아들이신 얼굴이었고요. 왠지 다들 조금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였달까요. 그래서 저도 이왕지사 덥고 습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마음은 한결 산뜻했어요. 친구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여행 동안 인상 찌푸리는 이 하나 없이 웃고 떠들면서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하고, 열심히 맛집도 찾아다니고 그랬습니다.
물론 대만에서 느낀 여유와 수용의 분위기는, 그저 우리가 바다 건너온 유람 중인 여행자라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한국의 지하철이나 길거리보다, 대만의 거기에서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더 많이 본 듯합니다. 저는 열심히 무언갈 헤쳐나가며 사는 것과 이렇게 받아드려 가며 사는 것에 대해 잠깐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도, 치열하게 사는 것도, 모두 다 한 번 아름답게 살아보자고 하는 일이니, 어떻게 살아도 좋을 일입니다.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는 감히 제가 말할 수 없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에 겪을 일들은, 하고 싶은 일은 결국 하게 되어있고, 일어날 일들은 꼭 일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 끝내 남을 괴롭히는 일이 되거나, 나를 망치는 일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고요. 그리고 일어날 일들 또한, 우리가 너무 버텨가면서만 살아야 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만 여행 일정 중 하루는 관광객들 사이에 껴서 대만에서 유명하다는 천등을 날리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대만이 일제 치하였던 시절에 일본이 석탄 조달을 위해 철길을 놓았던 곳인데, 탄광 산업이 과소화의 길을 걸으면서 조용한 마을이 되었다가, 어느새 영화 촬영지로 재조명되어 지금은 여행자들에게 각광받는 관광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철길 위에서 사람 몸통 만한 천등에 소원을 적고 하늘로 올려 보내는 천등 날리기가 아주 인기였습니다.
우리도 천등을 파는 한 가게에 들어가서 천등에 날려 올릴 소원을 적었습니다. 누군가는 미인과 사랑을 하고 싶다고 적었고, 누군가는 행복하고 싶다고 썼으며, 누군가는 안락한 삶을 누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고민하다가,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 언젠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부끄럽고 슬퍼서 천등을 날릴 적에 제 소원을 맨 뒤로 가장 안 보이게 돌려서 날려 보냈습니다. 몰래 감춰두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당신과, 훗날 어디 먼 따뜻한 나라로 떠나보자는 그런 기약 없는 약속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우리의 약속을 아끼는 일이 꼭 당신을 사랑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