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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Aug 05. 2021

목련꽃 머리끈

"나는 이번 주말에 제주도 갈 거야"

동생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밥 한 술 뜨기도 전에 여행 선포부터 하길래 놀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전에 한 번 말했던 거 같기도 하다.


"동생 놀러 가는데 용돈이라도 좀 쥐여 주나? 오빠가?"

엄마가 내게 말했다.


"쟤도 저번에 나 캠핑 갈 때 한 푼도 안주던데?"

김치찌개에서 왕건이 참치를 신중하게 고르던 내 숟가락을 엄마가 단숨에 내려친다.


"꺅!"

나는 여고생처럼 비명을 지르며 애써 모은 참치를 섬세히 다시 건져 올렸다.


내 비명을 듣고 빵 터진 동생에게 짐짓 어른스럽게 한마디 해주었다.

"웃어?"


곧 김치찌개 냄비 안에서 숟가락으로 티격태격하는 우리를 보고 엄마가 '으휴'라고 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오빠는 날 되게 예뻐했어..."

갑. 분. 옛날 얘기? 근데 왜 과거형이야? 예뻐한다면 한다지 했다니?


"외삼촌이 지금은 엄마가 싫대?"

지난 김장 때 배추를 누가 이렇게 짜게 절이냐고 한소리 들으셨던 게 아직도 마음이 상하신건가?


"아니 둘째 오빠 말이야."

아하, 또 그분의 이야기다.


나의 둘째 외삼촌이 될 뻔했던, 그러니까 엄마의 둘째 오빠는, 엄마가 중학교 때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

똑같은 학생 신분인데도 엄마가 수학여행이나 소풍이라도 간다고 하면 꼭 얼마쯤 찔러주시곤 했단다.

학교에서 배식으로 나오는 우유나 품앗이 때 새참으로 받아오는 크림빵, 옥수수빵 같은 것도 꼭 엄마한테 가져다주었다고 했다. 엄마가 늦게 돌아오는 날엔 자전거로 데리러 와 주기도 했다는데, 그 시절 시골의 마중이라는 건 뭐 요즘처럼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같은 짧은 길이 아니었겠지.


아무튼 이래저래 상냥한 오빠이셨던 듯하다. 공중파 드라마에 나오는 훈남 오빠쯤 되는 느낌이려나?


"그리고 우리 오빠는 풀잎으로 머리띠 같은 것도 엄청나게 잘 만들어줬어."

하루는 예쁜 꽃무늬 머리끈을 하고 온 친구가 부러웠던 엄마는 머리끈을 사달라고 졸랐다가 외할머니한테 혼나서 엉엉 울었다. 그날 둘째 오빠는 몰래 엄마를 데리고 머리끈을 사러 읍내로 나갔다. 그러나 시골 촌구석에 그것도 어린아이들이 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검은색 머리끈 하나를 집어 들고 왔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시무룩한 엄마에게 오빠는 미안하다며 거기에 하얀 목련 꽃잎을 달아줬다.


'오빠가 나중에 진짜 예쁜 머리끈 사줄게'


오빠 손을 꼭 잡고 돌아오던 길이 아직도 생각난다고 했다.


"나는 우리 오빠 돌아가시던 모습이 아직도 안 잊혀 영안실에 누워있는 모습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어. 얼마나 예쁘게 보였는지... 그냥 하얗게 누워있는 천사 같았었어."


소중한 사람이 그리 떠나가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못 견디게 슬플 때가 있냐고 물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 그래도 가끔씩 엄청 생각날 때가 있어"


특히 외할머니댁 마당에 둘째 오빠가 심어 놓으신 목련 나무를 볼 때가 그랬다고 한다. 목련은 본디 벚꽃과 개화 시기가 비슷해 3~4월이면 만개하고 5~6월이면 꽃이 다 떨어진다. 근데 둘째 오빠의 목련나무는 마치 소설처럼 오빠가 돌아가신 8월에 늦은 목련이 피어서 사람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고…. 그게 꼭 오빠가 꽃으로 찾아온 것 같아서 아름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며 또한 슬퍼지기도 했으려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사실 원래 주려고 했어'라고 웃으면서 괜히 동생한테 얼마를 찔러주고 나왔다.


우리 안에 누군가 앉아 간 자리에는 추억이 눌린 잔디처럼 남게 된다. 누구 말대로 기억은 윤색이라 추억의 책장 그 끝머리를 매만지고 매만지면 손때 묻어 반짝이는 모습들만이 남겨진다. 그렇게 아련한 걸 자꾸 마음에 묻어놓으니까, 내가 사랑했지만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은 내 한켠에서 8월의 목련을 그렇게도 피워대는 것이다. 슬프게, 때로는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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