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이에게 시집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이병률 시인의 《 바다는 잘 있습니다 》라는 시집이었다. 저자가 유명한 문인이기도 하고, TV예능 프로에도 잠깐 등장한 덕에 꽤 판매고를 올렸던 시집으로 기억한다. 내 주변에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더 실감이 났다.
신기한 건 이 책을 소장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직접 산 사람보다 선물로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아마 선물용 책으로 핫 했나 보다. 방송 때문이든 뭣 때문이든 요즘 같은 시대에 시집 선물이라니, 사람들이 퍽 낭만적이지 않은가?
내가 그녀에게 이 책을 선물 받게 된 배경은 이렇다. 당시에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 애와 나는 문자 그대로 '밤을 새 가며' 통화를 하곤 했다. 한 번은 병상 통화에서 그 애가 나에게 "너는 왜 시는 별로 안 읽어?"하고 물었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 "글쎄, 시는 좀... 어렵던데?"하고 대답했다.
수화기 너머로 별안간 "푸-핫" 하는 그 애의 웃음이 들려왔다. 별 것도 아닌 말에 어찌나 자지러지게 웃던지... 급기야 콜록거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다시 중태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잠시 후 '크흠-' 하며 호흡을 가다듬더니 "아 미안, 시집 좋아할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그게 그렇게도 웃을 일이었나? 얻어걸린 일이지만 어쨌든 그 애가 웃으면 나도 기분이 좋았다.
며칠 뒤 그녀가 나에게 보낸 책이 바로 저 책이었다. 그전에도 몇 번 그 애에게 책을 선물 받기는 했지만 시집은 처음이었다. 포장지를 풀고 책을 펼쳐보니 중간중간 포스트잇이 붙은 페이지가 있었다. 손편지도 함께 들어있었다.
'언젠가 네가 이 부분을 읽고 나와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나는 역시 시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시는 잘 모르지만, 노력하는 남자'로 보이고 싶었던 나는 꽤 훌륭하게 책을 완독 해냈다.
어떤 시는 읽다가, '이게 앞 뒤가 맞는 말인가?',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은 것도 있었다. 중등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친 나였기에 '시적 허용'이라는 걸 알지만, 누가 이렇게까지 하라고 허용해 줬냐며 일갈 한 번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책을 완독 하고도 썩 탐탁지 않아 하는 나에게 그 애는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꾹 눌러서- 한 군데에 담아 놓은 걸 함축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설명해 줬다. 설명하는 그녀의 말투가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귀여운 노력에도 '꾹 담아 놓은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게 무엇인지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집은 오래 병으로 고생하던,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마음의 병으로 고생하던 그녀에게 받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오래전 일이다.
내가 차를 사고 무려 40,000km를 탔을 때 나는 그 애에게 '너 지구 둘레가 몇 km 줄 알아? 4만이래, 4만! 따지자면 나도 지구를 한 바퀴 돈 거나 마찬가지지'라고 으스댔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내가 많이 돌아다닐수록, 그리하여 경험해 본 일이 많아질수록, 세상에 내 바퀴자국이 더 많이, 내 흔적이 더 많이 남을수록 더 마음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내 차의 주행거리 계기판엔 140,370km가 찍혀있다. 나는 지구를 무려 세 바퀴 반이나 돌아왔지만 어째 지구를 한 바퀴 돌던 시절보다 더 허전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 이후에 이해도 못 할 시집을 몇 권이나 더 사서 읽었다. 지구를 두 바퀴쯤 돌았을 때의 일이다. 왜 사게 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책은 그냥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어떤 책은 작가의 말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시답잖은 이유였던 것 같다.
여러 권을 봐도 여전히 꾹꾹 눌러 담아놓은 마음이라는 게 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 것들을 일부러 찾아 읽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붙여 보자면 시인이라는 작자들이 그다지 기뻐 보이는 사람이 없다는 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화자의 어깨는 죄다 초라해 보였고, 얼굴보다는 등이 보였고, 마음은 넓어 보이기보단 작아 보였다. 무슨 말을 써놓은 건지 잘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희한하게도 더 잘 보이는 것도 있었다. 산문집을 읽을 땐 너무 담백하고 명료해서 보이지 않던 작가들의 모습들이 횡설수설해 보이는 시구에선 보였던 것이다. '너만 그 일로 슬픈 것이 아니야' 하는 우울한 동질감 같은 것 말이다.
아무래도 이 직업은 큰 상실감을 견뎌내야지 될 수 있는 모양이다. 시를 쓴다는 건 슬픔보다 나중에 찾아오는 일인가 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시인이 되지 못한 것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직 그런 큰 슬픔을 견뎌본 일이 없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될 수 없음이 아주 다행인 일이었다.
문득 화상처럼 남은 내 과거를 물끄러미 본다. 버스 뒷자리에서 소매로 눈 가려가며 울던 날, 포장마차에 앉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몇 병이고 비우던 날, 오갈 데 없이 허정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 걷던 날, 쏟아내고 싶은 말들 묵묵히 삼켜낸 날들 같은 것들을 본다. 그리하고 나면 슬프게도 나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겠구나 하면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애가 거짓말쟁이 같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많은 말을 꾹 눌러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는 게 함축이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할 말이 너무 없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으니 떠오르는 낱말들을 대중없이 엮어내고, 이 마음을 차곡히 펼쳐놓을 방법 같은 게 생각이 안 나 주렁주렁 널어놓고, 그런 게 시가 아니냐고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끝내 묻게 되는 일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