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차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 친구는 본인이 차인 이유가, ‘내가 그 사람 취향이 아니라서’라고 했다. 그는 서로 취향이 잘 맞는 비슷한 것들끼리 만나야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내 친구가 어떤 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려고 했을지 훤히 보였다. 때로는 자기의 모습을 숨겨서라도 그 사람에게 맞춰 주려고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녀가 자상한 사람이 취향이라고 하면, (나한텐 한 번도 해주지 않던) 안부전화를 하거나, 집 앞까지 바래다주거나, 그녀의 밥 위에 맛있는 반찬을 올려주거나 했을 것이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좋다고 하면 칭찬이 많아지거나 음유시인에 잠깐 빙의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무슨 사이코매트리 능력자라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인간은 대체로 그런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남중남고 출신에, 주위에 친구들이 대부분 시커먼 사내들뿐인 나는, 친구들과 '사랑'같은 낯 간지러운 화제를 꺼낼 땐 항상 주의한다. 사내아이들과 맨정신으론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랬다간 다들 사고 회로가 고장 날 것이다. 좋게 말하면 쑥스러워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욕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남자들이 얼마나 사랑에 면역력이 약한 생물인지 알 수 있다. 꽃가루가 알레르기 환자의 코끝을 조금만 스쳐도 재채기가 나오는 것과 같다. 만약, 남자를 잠깐 고장 내 보고 싶다면 '사랑해'라고 말해보자. 연인 사이에도 효과가 좋을 것이다. 아직 연인 사이가 아니라면 효과가 더 굉장할 것이고, 같은 남자끼리라면 효과가 더더욱 굉장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주제로 말하고 싶으면 약효(술)가 조금 돌았을 때 살며시 던져야 한다. 그러면 속에만 감춰놨던 사랑의 지론을 한두 마디씩 툭툭 거들다가 이내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기다렸다는 듯이 미끼들을 덥석덥석 무는 것이다.
아무튼 아까 그 친구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는 사랑에 빠지려면 서로가 서로의 취향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줄곧 내세웠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우린 참 닮아서 좋다는 광고도 있고,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노래도 있듯이 사랑의 원인은 제각각이다. 100개의 사랑엔 100개의 사연이 존재한다.
서로 닮았는지 다른지, 잘 맞는지 아닌지, 그런 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 큰 관계가 없다. 나는 사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수챗구멍 때문이다.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이 있다. 그녀는 나와,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결국 그 병을 이기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몇 번 연락을 시도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보내기 위해 긴 편지를 썼다. 하루에 다 못 쓰고 며칠 밤을 썼다. 어떤 날은 종이를 채우다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고, 어디까지 썼는지 기억이 안 나서 다시 쓰기도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북북- 찢고 새로 썼다. 편지를 보내고 얼마 후, 늦은 밤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기다리던 그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쩌면 그녀가 나의 정성에 감동해 마음을 돌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편지만큼 긴 통화를 했다. 끝에 그녀가 말했다.
‘미안하다는 건 아주 힘이 센 마음이야, 그래서 이 미안함을 안고 너를 같이 껴안을 수가 없는 거야’
보이지 않을 우는 얼굴이 수화기 너머로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사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수챗구멍 때문이다. 욕조에 수챗구멍을 막아 놓으면 물은 가만히 차오르기만 한다. 그러다 수챗구멍을 열면 맹렬하고 역동적으로 물이 움직인다. 사랑도 이와 같다. 빈 틈 없는 마음엔 아무리 뜨거운 것이 차올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나는 상처 난 조개껍데기 같아서 아무도 나를 줍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내가 그 애를 사랑하게 됐던 말이었다. 마치 유리에 무거운 물체가 ‘퍽-!’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잔잔히 오르던 마음이 급격히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 깨질 것 같은 틈으로 마음이 와락 쏟아질 거라는 징조였다.
어렸을 때는 기쁨과 웃음이 가득한 사랑을 꿈꿨다. 내가 누구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건 기분 좋은 사건, 보기 좋은 모습 때문일 거라 생각했지, 슬픔이나 결핍 때문에 사랑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일 때는 알 수 없고, 균열이 생겨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 마음대로 예쁘게 다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어찌할 바 없이 쏟아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간의 마음은 고장 난 수도꼭지 같아서 아무리 세게 잠가도 물이 새어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것이 아니라 곳이 필요하다. 욕조를 채워줄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쏟아질 곳 말이다. 때로 누군가가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칠칠치 못하게 부딪혀서 자주 멍드는 모습이 속상하기도 하고, 이번 달 생활비와 다가오는 애인의 생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의 모습에 눈물짓기도 한다. 생판 처음 보는 아이에게 큰돈을 후원하는 일도 생긴다. 좀 이상하고, 신경 쓰이고, 아픈 순간들, 그런 틈을 발견하면 내 사랑이 곧 그쪽으로 달음질할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한 번 수챗구멍이 열리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 없어진다. 서툴거나, 가난하거나, 배움이 짧거나, 병상에 오랫동안 누워있거나,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차갑거나, 안 좋은 과거를 가졌거나. 주변에서 '왜 그런 사람을 사랑을 하냐?'라고 말려도 타인에게는 설명할 수 없다. 프로야구를 보면서 '내가 발로 던져도 저거보단 잘 던지겠네'라고 하지만, 관중석에선 마운드에 선 투수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게 아니라 그냥 그쪽으로 쏟아지고 있는 건데 뭘 어떡하겠어.
물론 이런 게 사랑인 줄 잘 몰랐던 시절에는, 나는 그저 그 애를 향한 마음을 앓기만 했다. 그 애를 보면서 늘 궁금했다. 왜 굳이 떠난 사람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아픈 추억을 꺼내어 들쑤시는지. 그 사람이 다시 자기를 찾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 왜 창문 밖을 한 번 더 내다보는지. 그때 그녀에게 나는 아마, 마운드 바깥 저기 철창 너머에 있는 관객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떤 정원이라면, 나는 그 애가 있는 정원으로 몰래 들어가, 거길 가꿔주고 싶었다. 언젠가 거기에 꽃이 핀다면, 여기에 꽃씨를 뿌리고 물도 준 건 바로 나라고. 그러므로 너를 사랑하는 건 바로 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과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설렘보다 속절없이 아픈 일이 더 많았다. 저기 문 바깥쪽에 있을 땐 모르던 마음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망가진 화단을 네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쓸어내릴 때에도, 시든 행복을 한 움큼 손에 쥐고 정원을 서성일 때에도, 나는 그걸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 외에는 달리 너를 사랑할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