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왕 Jul 21. 2021

다시, 같이 울고 싶어서

노가리+먹태+쥐포+마른오징어 set 안주 27,000원.


메뉴판을 잘 못 봤나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거북목을 길게 빼보고, 살짝 비벼보기도 한다. 저기 건너, 건너, 건너편에 앉아있는 예쁜 여성도 보이고, 저어기 멀리 서빙을 하고 있는 예쁜 종업원도 보인다. 휴- 다행히 시력은 정상인 듯하다. 그런데 이 마른안주는 수분도 없이 말라비틀어진 것들이 참 사악한 가격이로다... 심지어 주꾸미 삼겹살이나 차돌 숙주 볶음 같은 것도 2만 원인데 말이다.


안주를 고른 사람은 친구인데, 나는 친구한테 "마! 이 돈이면 내가 편의점에서 사다가 내와도 20%는 남겠다"라고 할 뻔했으나 다시 꿀꺽 삼켰다. 남자 친구들끼리 술 마실 때 안주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은 요즘 가장 안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던 그날 버스에서 내릴 때 카드를 못 찍고 그냥 내리는 바람에 환승 할인을 못 받았다는 악재가 있었지만, 친구는 그날 환승 이별을 당했으므로 선택권은 그에게 있다. 친구가 마른안주를 먹고 싶다기에 소시지 야채볶음을 시키고 싶은 내 마음은 꾹 누르고 군말 없이 마른 녀석들을 시켰다.


친구가 좋아하는 안주가 나왔지만 어째 그의 표정은 시무룩하기만 했다. 이런 어색하고 삭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자못 농담을 던져도 대충 피식 웃고 넘길 뿐이었다. 나는 안 그래도 힘든 일이 있는 사람한테 억지웃음 따위로 힘쓰게 한 건 아닌가 싶어서 미안해졌다.


그가 마른오징어를 집어 들었다. 몇 번 씹다가 질겼는지 이내 캔에 담겨있는 김 빠진 맥주를 얼마간 삼켰다.

비쩍 마른 그가, 마른 웃음을 짓고, 마른오징어를 씹는다. 문득 마른 것들은 왜 죄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두 뺨에 보기 좋게 살이 오른 그가, 통통한 오징어를 씹고, 살찐 눈물이라도 와락 쏟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음은 마음이 텅 메말라도 어떻게든 쥐어짜 낼 수 있지만, 눈물은 그럴 수 없다. 눈물은 뭔가 차 있어야 그제야 흘릴 수 있다. 그래서 마른 웃음이라는 건 있어도, 마른 눈물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목이 콱 매어서 오갈 곳 잃은 울음이 끝내 눈까지 차올라서 터져 나올 땐 우리에게 뭔가가 가득 차있다는 얘기다. 슬퍼서 운다는 건 그런 뜻이다. 가끔 너무 오래 남는 기억들 때문에 '아직도' 슬퍼서 운다는 건, 때때로 우리가 말라버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되곤 한다.


밥이나 먹을까 하여 밥솥을 열었는데 밥이 없다면 그때부터 이상하게 허기가 밀려온다. 우리의 마음도 위로나 받을까 하고 뚜껑을 열었는 데 안이 텅 비어 있거나 말라비틀어져있다면 그때부터 견딜 수 없이 서글퍼지는 것이다.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슬픔을 먹으며 이만큼이나 살아 낼 수 있던 이유는 뚜껑을 열었을 때 아직 말라버리지 않은 슬픔이 그 안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다 잊었다', '이제는 추억이다'같은 황량한 말로는 미처 채워지지 않는 위로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입 베어 물면 다시 왈칵 눈물이 새어 나올 것 같은 것들이 종종 그 안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말라비틀어지지 않을 수 있던 나는 친구의 마음도 그가 겪은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위로받는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본디 위로란 타인보다는 나를 좀 더 향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의 울먹이는 어깨를 감싸 안아주지 않고는 미어지는 자신의 마음 또한 달랠 길이 없어지는 것이 그 증거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힘도 되고 그런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멀리 떠나간다면, 너는 어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