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사월

by 마왕

옛 애인 살던 집 골목에 있던 벚나무에 팝콘 같은 벚꽃이 필랑 말랑했던 날에.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연락이 오던 옛 애인에게, 어느 날은 이제 두 번 다시는 보지 말자고 했었다.


전에 헤어질 땐 그렇게 울던 사람이 더는 울지도 않고 입을 앙다물었다.


신파극 마냥 영원할 것처럼 안녕을 고하고 표표히 돌아섰는데, 우습게도 먼저 다시 연락을 한 것도 나였다.


어느 장마철, 비가 억수로 오던 날. 비 때문에 양말도 젖고, 하수구도 넘치고, 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옛 애인 살던 집 반지하 셋방이 너무너무 걱정이 되어 오금이 저리는 것 아닌가.


내가 가서 볶음밥도 얻어먹고, 하룻밤 잠도 얻어 자고, 칫솔도 빌리고 했던 곳인데. 그이가 거기서 지금 연신 바가지로 물을 퍼 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불까지 다 젖었을라나, 냄비가 떠내려간 건 아닐까 그 집 볶음밥은 진짜 완벽하게 오목한 그 편수냄비에 해야 제 맛인데... 근데 그 집 화장실에 물 퍼 나를 바가지가 있었던가? 그런 불안으로 꼬박 밤을 새우다가 다음날 결국 문자 한 통을 남겼다.


'비가 너무 많이 와요, 집은 좀 괜찮은지요'


종일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속엔 이미 옛 애인은 물을 퍼 나르다가 젖은 장판 위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저녁에 답장이 왔다. 지금은 이사해서 괜찮다는 얘기였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랑. 잘 지내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그때는 그 말을 듣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거기서 나는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고 그랬다.


시간이 지나고서는 내가 다시 보지 말자고 한 말도 못 지킨 게 너무 부끄러워서, 그해 사월에 대해 생각했다. 주섬주섬 남은 짐을 챙겨서 용달 트럭에 몸을 싣고, 채 다 피지 않은 앞골목의 벚나무를 뒤로하고, 다른 먼 동네로 떠나는 당신을 생각해 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가 보면 나도 꼭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졌는데, 나는 딱히 갈 곳도 없고 그렇다고 돌아올 곳도 없는 기분이었다.


오늘 일기에는 어디 멀리 가서 놀다 오고 싶다고 썼다. 놀지 못할 심산이면 밥이라도 맛있는 거 먹고, 꾀죄죄한 몰골로 어슬렁거리다 오고 싶다고 썼다.


그때도 이렇게 봄이 피다 말다 하였다.

먼저 손 흔들지 않으면 떠나가지 않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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