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한 낯색 하나가 떠오른다.
"아버지, 저랑 약속 하나 해주세요. 제 제삿상에는 절대 다른 것은 올리지 말고 라면만 하나 끓여서 올려주세요. 찬밥이랑요. 꼭이요, 손가락 걸어주세요."
검어지는 손과 늙어가는 손가락이 맞닿던 감촉. 그 후로 아버지는 기일에 한 번도 다른 찬은 올리지 않고, 라면과 찬밥만 올렸다.
반쯤 끓은 라면에 달걀 하나를 살짝 풀고, 파를 어슷하게 썰어서 다 된 라면 위로 정갈히 올리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였다. 밥은 흰쌀밥 곱게 지어서 미리 퍼다 놓고 한 김 식혔다가 차게 내었다.
단출한 상을 앞에 두고 몇 번 절을 하다가, 제사가 끝나면 아버지는 음복도 마다하고 옥상에 가셔서 담배를 길게 태우셨다.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입으시곤 다 불어 터진 면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 비우셨다. 어디에 말 못 할 울음도 라면과 함께 목으로 삼키셨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