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 달라고 한 건 아니지만, 알아주면 좋은

by 마왕

퀴퀴한 골목, 주차 안내원들 쉴 곳이었던 컨테이너 뒤에 터 잡은 새끼 밴 고양이 한 마리. 동냥할 곳도 비루먹을 곳도 없는 데에 쓰레기도 치워주고 밥그릇도 놓아주던 아저씨.


아침 아홉 시만 되면 꼬박꼬박 구내식당 메뉴판을 갈아 끼우며 직장인들에게 밥 먹으러 오라고 소리 없이 부르는 일.


테헤란로 지하 일층 전줏집에서 혼자서 4인 식탁에 걸터앉아 북엇국으로 해장을 하는데, 이젠 목청도 가늘어져서 멀리 있는 손님 부르는 건 힘들어하는 할머니가 내가 오랜만에 온 것은 어찌 기억하고는 몰래 와서 검은콩 두유 한팩 쥐어 주는 손.


오빠는 왜 고기 먹을 때 꼭 뼈 붙은 쪽만 가져가냐고, 실하고 잘 익은 거 남 주지만 말고 오빠도 좀 먹으라고 곱게 흘기던 눈.


다른 멋쟁이가 당신에게 먼저 건넨 큰 선물 때문에, 품속에서 차마 꺼내지도 못하고 만지작 거리다가 말았던 편지 한 통.


가난해도 좋으니 이렇게 밤에 자주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러 오자던 애인 머리 위로 숨 막히게 밝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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