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이라고 해서 다 힘들었던 것은 아니라는 대치키즈의 증언
"학원 보내지 마세요. 아이가 힘들어요."
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학교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가서 놀 곳도 마땅치 않은게 현실이다.
내 학창시절의 기억은 학원으로 가득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많은 학원이 힘들지 않았냐고 하는 놀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 정도는 다 다닌다는 이도 있었고, 누구는 학원을 가고 싶어도 집안 형편이 안되어서 못다니는데 복에 겨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말들이 다 일리가 있다.
실제로 어떤 학원은 고통스러워 트라우마로 남았던 반면, 일부 학원은 유년시절의 행복한 추억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좋은 양분이 되기도 했다. 착한 학원, 나쁜 학원, 이상한 학원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엄마는 "예체능을 가르칠 수 있는 시기는 초등학교 저학년밖에 없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고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국영수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뭐든치 최고로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셨던 엄마는 태릉 선수촌에서 전 국가대표 코치에게 쇼트트랙을 배우도록 했다. 당시 영재교육원 동기들과 다같이 스케이트를 배우러 갔었다. 연습 시간에는 아이스장에 다른 손님이 오지 않고 우리들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넓은 빙판 위에서 마치 첫걸음마를 떼듯이 스케이트를 탄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있다.
트랙의 가운데에는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는 아이들이 예쁘게 턴을 돌았고, 쇼트트랙 학생들은 빙판 가장자리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엄마들은 창문 너머 빙판이 보이는 실내에 앉아 핫초코를 마시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추운 곳에서 기다리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특별히 잘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즐겁게 스포츠를 즐겼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도 종종 스케이트장을 찾아 즐기고는 한다.
반면 트라우마가 되었던 학원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쯤에 다녔던 과학학원에서는 창의력 교육을 한다면서 다양한 수업을 했다. 그날은 해부 실험이 있는 날이었다. 선생님들이 학원 뒤 텃밭에서 키우던 토끼 2마리를 귀를 잡고 데려왔다. 개구리를 해부하는 동안 토끼를 마취시켜야 한다고 했다.
큰 스테인레스 통에 드라이아이스와 토끼를 넣고 뚜껑을 닫고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토끼가 완전히 마취되지 않았다. 나는 토끼가 혹시나 깨어있는 상태로 해부가 될까봐,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꼭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아이들은 내가 토끼를 적극적으로 마취시킨다고 하면서 이상한 아이로 취급했다. 초등학생들의 해부 실험에 사용된 개구리와 토끼는 학원 뒷마당의 토끼 우리 옆에 묻혔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그 학원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올만큼 이상한 교육이었지만 당시에는 나름 프리미엄 교육의 일환이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도서관에 가면 엄마는 어른 책을 읽고,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가져다 도서관 구석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매번 색다른 도서관에 가서 엄마와 간식을 먹고 책을 먹었던 기억이 행복하게 남아있다. 한국 문학 책을 참 좋아했는데, 평생 읽을 한국문학을 그 당시에 몰아서 다 읽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접한 덕분인지, 나는 독서 토론 수업이 참 재미있었다. 그 점을 눈치챈 엄마는 어김없이 딸을 독서토론 학원에 보내셨다. 타고난 성향상 경쟁심과 승부욕이 강했기에, 나는 찬반토론을 하고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수업환경이 잘 맞았다. 또한 한국문학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감수성이 풍부했었기에, 문학책을 읽고 주인공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식의 수업도 참 즐거웠다. 라이트 형제가 만약 비행기를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나였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파피용의 세계관은 또 어찌나 즐거웠던지!
지나친 예체능 교육이 독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참 좋아하셨다. 문제는 내가 피아노에 정말 재능이 없었다는 점이다. 개미 몸통만한 악보기호를 읽어가며, 한 옥타브를 다 치지도 못하는 작은 손으로 온갖 기교를 배우고, mp3 버튼을 누르면 바로 음악이 나오듯이 악보를 줄줄 외워서 쳐야 했다.
멜로디 없이 손가락 연습만 반복하는 '하농'을 치면서 꾸벅꾸벅 졸았고, 체르니 40번과 소나타 이후로는 진도를 전혀 못나갔다. 반면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다른 친구들은 소나티네부터 베토벤, 쇼팽까지 쭉쭉 배워나갔고 연주회에서 상을 타기 시작했다.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피아노 실력이 늘지 않자, 엄마는 내가 연습하지 않는 것을 문제삼으셨다.
당시 엘레베이터가 없는 빌라에 살았는데, 엄마는 어느 날 나를 계단 아래로 내쫒고 피아노 악보를 갈갈이 찢어 내 머리 위로 던지시면서 "이렇게 억지로 할꺼면 때려쳐!"라고 소리치셨다. 나는 엄마한테 엉엉 울면서 두손을 모아 빌었다.
엄마, 숙제 제대로 할게요.
제발 수업 그만두지 말아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대사가 반대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피아노를 억지로 시킨 것은 엄마였고, 나는 피아노가 더이상 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마음과 반대로 나갔다. 그것이 엄마가 원하는 대답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하긴 엄마가 때려치라고 한다고 해서 "네 잘됐네요. 안그래도 그만두고 싶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내공의 아이가 과연 있을까 싶다. 인생 2회차가 아니고서야 말이다.
영어학원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난 당시 강남에서 유명한 영어 프랜차이즈 학원에 다녔었는데, 토플 시험 점수에 맞춰 분반을 했다. 원어민 선생님이 독해, 듣기, 작문 등을 가르쳤고 학원에서는 영어로만 대화를 해야 했다. 내 영어 이름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헤라'라고 지었다.
강남의 그 영어학원은
미국식 영어교육을 컨셉으로 내세웠지만,
영문법, 영작문과 같은 주입식 공부를 해야
높은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어도 아직 미숙한 아이들에게 '해양생물에 대한 대학강의' 같은 듣기 지문을 들려주며, 사실상 '찍기 시험'을 통해 반 레벨을 나누었다. 수업 시간에는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원어민 선생님을 멍하게 바라보곤 했다. 영어만 쓰게 해서 그런지, 서로 말을 잘 안해서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친구들과 같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이 가장 즐거웠다. 학원에서 친해진 친구들과는 학교에서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학교에서 학원 숙제를 몰래 같이 풀고, 학원에 숙제를 안해가서 같이 혼나는게 추억으로 남기도 했다.
반면 학원을 다니는 것이 점점 괴로워지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다. 학원 숙제를 풀기 위해 또 다른 과외를 하거나, 인강을 듣는 아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숙제는 말도 안되게 양이 많아졌고, 다른 학원을 가느라 숙제를 할 시간은 부족해졌다. 밤이 캄캄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집에 오면 핸드폰을 빼았기고 숙제를 해야 했다.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몇 시간에 걸쳐 칠판에 문제를 푸는 것을 지켜봐야 했는데,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4시간 가까이 책상에 앉아 졸지도 딴짓을 하지도 못하고 칠판에 적히는 수학 문제를 응시해야 한다니, 한창 에너지가 넘칠 사춘기 학생들에게 그보다 더한 고문이 있을까.
또한 대치동 교육은 '선행학습'과 '최상위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개념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쉬운 수업을 듣는 것은 대치동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치동 학원들은 최고 난이도의 수업을 제공하는 것을 프리미엄이라고 포장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도저히 수학에 감을 잡지 못하다가, 수능에서는 100점을 받았는데, 솔직히 이 점 만큼은 학원 선행학습 덕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원 수업을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고 판단해 학원을 그만두고, 고등학교 때 수학 기본서를 직접 구입해서 해설서와 씨름하며 혼자 공부했던 시간이 오히려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학은 주입식 교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패턴을 암기해서 적용하는 방법으로 풀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맞는 수준에서 하나씩 소화해나가야 한다.
초등학생이 고교 수학까지 진도를 나갔다고 자랑하는 것은,
병아리한테 1kg짜리 사료를 다 먹였다고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량한 병아리가 아니고서야 그 많은 사료를 소화할 수 있을까?
배탈나서 당분간 사료는 쳐다보기도 싫어할 것 같다.
"지금 당장 영어학원 수학학원을 그만두고, 독서논술과 스케이트를 가르치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내 경험에 의해 '좋은 학원'과 '나쁜 학원'을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이 생겼을 뿐이다.
엄마와 함께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이라면 그것이 학원이든 도서관이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아빠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어린 아이에게도 분명 '적성'과 '성향'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적성과 성향에 맞는 활동은 성장의 달콤한 양분이 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의 난이도는 가파르게 올라간다. 선행학습보다도 내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학생 '스스로'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미국식 영어교육을 하든지, 한국 입시를 준비하면서 한국식 교육을 하든지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주입식 교육이 필요한 미국식 영어교육이라니! 그야말로 자본주의가 낳은 혼종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학원이라는 틀 안에서 나름대로의 추억을 쌓으려고 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어쩌겠는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는 그저 행복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한편, 다른 아이들은 사교육의 상술에 휘말려 괴로운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