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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자기혐오 속에서 살아남는 법

by 고시포비아

초등학생의 기억은 왜 그렇게나 선명한 걸까?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 단계라서 기억하기가 쉬운건가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우울하고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기지만, 시간이 흐르면 금세 잊게 된다.

하지만 어릴 때의 기억은 무의식 속에서 불쑥 찾아오곤 한다.


그곳은 '운문 학원'이었다.

발음을 틀리지 않고 책을 잘 읽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책이 가득 쌓여있던 마루 위에, 비슷한 또래의 꼬마 여자아이와 마주보고 앉아 책을 번갈아 읽었다.

같은 영재학원에 다녔던 친구였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자 엄마들이 우리를 데리러 교실에 들어오셨다.

선생님이 친구의 엄마에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 "OO이는 책을 참 잘 읽네요."


선생님은 엄마와 내 쪽을 돌아보시며 걱정되는 표정으로 덧붙이셨다.


- "그런데 XX이는 말을 많이 더듬네요. 어머니가 신경을 많이 써주셔야 겠어요."


엄마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나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온 엄마는 그날따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 비상구로 향했다.


어두운 계단 복도를 내려오는 길에 엄마는 내내 딸의 손을 아프도록 세게 쥐었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 엄마를 올려다보며 불렀지만, 엄마는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

나지막히 읊조리던 소리가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 "내가 너 때문에 이런 대우를 받아야겠니?"




엄마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고, 나에게는 그 이모의 딸인 사촌동생이 하나 있었다.

사교육에 돈을 쏟아붓듯이 키웠던 나와는 달리, 사촌동생은 별다른 사교육 없이도 어렸을 때부터 제법 공부를 잘했다.


하루는 엄마와 이모가 영어 책을 가져다 두고, 나와 사촌동생에게 번갈아 영어를 읽게 했다.

사촌동생이 먼저 운을 띄웠고, 발음이 좋다며 엄마와 이모가 좋아하셨다.


내 차례가 되자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 "In One, Eight, Nine, Five, there was a..."


1895년 연도를 끊어 읽자, 이모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 "연도를 잘못 읽은 거 아니니? OO가 다시 읽어봐봐"


동생이 올바르게 다시 읽자, 이번엔 엄마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 "아니야. 이렇게 읽는 방법도 있어. 둘 다 되는거야."


큰 이벤트만이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 분위기와 말들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에 스며든다.


이 날의 대화는 친척 간 화목했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억의 편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어떤 기대와 역할에 부응했어야 하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그렇다. 어른들에게는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얘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밤늦게 학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중학생 정도로 되어보이는 여자애 둘이 시끌벅적하게 버스에 탑승해 앞자리에 앉았다.


유학 생활을 한 것인지, 둘은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하다는 듯이 유창한 영어로 서로 대화를 했다.

일순 버스 안이 조용해졌다.

엄마와 나도 덩달아 조용히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것은 다 못알아듣겠는데, 유독 "Chickenpox"라는 단어만 들렸다.

그 친구들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옆자리에 앉은 엄마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 지던지.

버스에서 내려 한숨 돌리기도 전에,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가시돋친 말이 나를 다그쳤다.


- "너 쟤네가 무슨 얘기 했는지 이해했어?"

- "어.. 치킨 먹는 것 같던데.."

- "너는 돈을 퍼부어도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못하니?"


엄마는 화난 발걸음으로 앞장서 먼저 집으로 가버렸다.

'딱봐도 유학 갔다온 것 같은데.. 내가 쟤네보다 어떻게 잘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는 반항의 씨앗이 자라났지만,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아 전투력이 약했던 나는 말없이 잰 발걸음으로 엄마의 뒤를 쫒았다.


다 지나간 지금에 와서 떠올리면, 엄마의 그런 성격이 참 웃기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아마 자기도 못알아 들어서 엄마가 화를 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어린 날의 나에게는 내면의 혼란으로 다가왔음에 분명하다.


시험 성적표를 받는 날도 아니고, 숙제 검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그저 집에 가는 길에 느닷없이 혼나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이 똬리를 틀었다. 또 한편으로는 정말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하는지에 대한 '자기혐오'가 자리잡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경쟁,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대와의 경쟁, 끝없는 경쟁 구도 속에서 나는 급기야 나 자신과도 싸우게 되었다. 무엇을 해도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고, 멈춰 있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성취를 부정하고, 에너지가 방전되어 나가떨어져도 마치 배터리가 0%인 핸드폰에 충전기를 꽂고서 전원 켜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다그쳤다.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타인과 경쟁하는 것은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지만, 내면의 채찍질은 쉽게 멈추지 못했다. 이제는 나한테 뭐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도, 내면화된 고시 감독관은 내 현재의 상태를 무시하는 한편 더 빨리, 더 멀리 가야한다고 재촉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달렸다. 기꺼이 채찍질을 당하거나, 누가 날 다그치지 않아도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이 정도도 못해? 이것밖에 못했어? 니 수준이 이것밖에 안돼? 그러게 진작 했어야지, 못하면 열심히라도 해야지, 내 안의 목소리는 쉼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미 나자빠졌다. 과부하가 걸려서 펑 터져버린 발전기처럼, 아무리 연료를 떼우고 모터를 돌려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욕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경쟁이라는 각성제가 잘 들지도 않는다. 엄마가 허무하게 가시는 것을 너무나 생생하게 목격해서일까. 초조함도 불안함도 그저 허상같다.


꼬인게 많아서 누구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성격도 아닌지라, '괜찮다, 잘했다, 쉬어도 된다'는 격려를 받아도 금세 휘발되어 버린다. 대문자 F인 남편은 처음에는 내 상처를 열심히 위로해주고 다독여줬지만, T한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제는 반쯤 포기한 듯하다.


결국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밖에 없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는 중이다. 그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은 무언가에 혼자서 깊이 몰입할 때이다. 글을 쓰거나, 개발이나 게임을 할 때는 몰입이 쉬워서 좋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후회할 틈이 사라진달까. 그게 꽤 괜찮은 위로가 된다.


내 안의 고시 감독관도 이제 바뀔 때가 되었다.


가끔 칭찬 하나쯤은 해주는 게 어때.

조용히 커피나 한잔 내려 마시고, 각자 글이나 쓰자고.

채찍은 내려놓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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