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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Oct 06. 2019

최소한을 소유하는 생활(Minimal Life)

통신이 빠르게 발달한 지금이야 선박에 인터넷과 카톡을 비롯한 sns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많은 수의 정보와 지식을 승선 중에도 쉽게 접근할 수가 있게 되었지만 해양대학을 졸업한 90년대에만 하더라도 통신이란 겨우 모르스 신호를 이용한 전보와 위성전화가 있었는데, 전보는 전송하는 글자의 수가 많을 수 없었고, 위성전화는 거의 분당 오천 원 정도의 만만찮은 비용이라 아주 특별한 사건이나 급한일이 아니라면 전화를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선박, 즉 배에서 육상의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은 주로 휴가 하선하여 집에 있을 때 최대한의 자료를 수집하여 배를 타던지, 승선 중이라면, 가족이나 친구가 책이나 편지 등 배에서 필요하거나 요청한 물건을 구입해서 한국에 있는 회사로 발송하면 회사는 해당 선박의 우편물이랑 물건을 일정 기간 동안 모아 보관했다가 선박 기항 일정에 맞추어 해당 해외 대리점으로 보내면 대리점에서는 물건을 해당 선박에 일괄 배달하는 방식이었다.

항구 기항 일정이 미리 정해지는 정기선의 경우 배달 과정이 그나마 수월 했지만 부정기선은 기항항이 수시로 변경되기 때문에 우편물이나 물건들이 정기적으로 배달되지 못해 회사에서 보관하다 많은 수의 물건들이 한꺼번에 선박에 배달되곤 했었다.




그 시기 사진 공부에 목말라 있던 나는 휴가 중 몇 가지의 책을 수소문해서 구해 읽어 보기도 했고, 매월 발간되어 나오는 사진 잡지를 이용하였는데 그 이유는 잡지 내용에 독자들이 사진을 보내면 전문 사진가들이 그 사진을 평가해주는 코너가 있었고 사진 초보로써는 그 전문작가의 평가로 공부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 생각했었다.

월간사진을 선박에서 받아 볼 수 있는 방법이 가족이 매월 구입해서 회사로 보내고 회사는 대리점으로 다시 대리점에서 내가 타는 배로, 그제야 비로소 내 손에 들어왔는데 어떨 때는 두세 권이 한꺼번에 배달되었다. 구입해 주는 가족 들의 정성도 대단했고, 배달된 월간사진이 손에 들어 온날은 괜히 기분이 좋은, 복권이 당첨된 날이었고 한꺼번에 두세 권이 배달될 때에는 그때까지의 간절한 기다림을 상쇄하고 남는 큰 행복한 날이었다. 웃기게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을 다 읽은 후 또 다음의 책을 만나려면 또 몇 달을 기다려야 했으므로 배달된 책을 한꺼번에 읽기가 아까워 아끼고 아껴 조금씩 읽었다는 것이다.




월간사진을 삼여 년을 구독했고 고스란히 이사할 때마다 신줏단지 모시듯이 가지고 다녔던 터라 36권 정도가 연도별 달별로 책장에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다. 그동안 몇 번이고 처분하려고 했지만 남들이 도저히 알지 못하는 나만이 알고 간직해온 추억과 애절함이 더불어 있기에 차마 버리지 못하였다.

그 이후 이 책들을 재차 읽어 보지도 않았고, 가까운 미래에 다시 읽어볼 가능성이 있는지 자문해보았지만 확률 제로라는 결론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란 소중한 추억과 자기 손때(정)와의 이별을 고할 때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사용할 계획도 가능성도 전혀 보이지 않지만 자기만의 연결고리를 매번 끊치 못하고 소유하고 있는 것이야 말로 집안 복잡하게 원인 일 것이다.




이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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