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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Jun 15. 2020

이제서야 가족 음식이 된 비지찌개

비지는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 때 나오는 콩의 찌꺼기로 “주”가 아닌 “부”의 지위에 있는 서민 음식입니다. "주"가 아니란 의미는 고급 음식 재료라기보다는 버리기에도 먹기에도 애매하다 는 것 이겠지요. 지금도 가끔 두부 전문집 앞을 지날 때면 필요한 만큼 무료로 챙겨가라는 문구가 있지만 선 듯 손이 가지 않는 음식 재료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시골에서 살아가기 막막했던 우리 집은 아들 둘, 딸 둘 그리고 엄마와 함께 고향땅을 버리고 대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동생 둘은 임시로 시골 외가 외할머니댁에서 자랐고 두 살 많은 누나와 나는 엄마와 함께 대구에서 지금은 생소한 10개월 계약의 단칸방 사글세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객지 생활에 맛있는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사치였고 굶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습니다.


성장기 배고픔에 얼마나 철이 없었던지 소고기 라면을 끓여 놓으면 서로 자기 몫을 확보한다 라면 그릇에 침을 뱉어 자기 몫을 차지한 기억도 생생하여 참 가슴 아픈 추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손에는 라면이 아닌 비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라면을 주식과 다름없이 달고 살았던 우리에게 비지란 색다른 식재료는 맛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비지에 생각도 못한 초대형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비지를 띄워 찌개를 만들었습니다. 라면만 먹다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가 숭숭 들어간 비지를 먹는다는 것은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삼겹살을 먹다 고급 식당에서 특별식으로 한우 갈비를 먹는 것 같은 신세계였습니다. 형제, 자매의 숟가락질은 신이나 아주 배가 불러 산만하게 될 정도로 잘 챙겨 먹었습니다. 그러나 먹는 즐거움은 너무나 짧았고, 너무나 강렬했던 사고는 그 이후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비지를 먹은 가족 모두는 누구랄 것도 없이 배를 부여잡고 구르며 미친 듯이 토하기 시작했던 거였습니다. 죽을 만큼 속의 것을 내어 놓아야 해 화장실, 하수도, 양푼이 세수대야를 비롯 주변이 엉망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끔찍한 모습과 아픔에 모두 배를 잡고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식중독으로 조사라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병원이란 생각지도 못한 시절이었으니 우리 가족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고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비지란 잘 못 띄우면 독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면 아들, 딸이 토하고 죽을 만큼의 식중독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 당신이 배가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인데 미안함에 말을 못 하셨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면 하염없이 마음이 짠하기만 합니다.


그 이후 아무리 못 살고 먹을 것이 없더라도 우리 가족에겐 비지의 존재는 없어야 했고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에게 잊혀 세상에 없는 음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사건 이후 강산도 몇 번 변했습니다. 단칸방에 살았던 가족들은 다행스럽게 방이 두세 개가 딸린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살이(웰빙)다 하여 자연 식재료가 대우를 받게 되었고 다양한 비지 요리 방법이 개발됨에 북 X순두부 등 두부 전문집이 생겨 남에 따라 비지를 맛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과 환경은 하나둘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나쁜 기억들을 희석시켜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누나가 있는 대구에 전화를 했습니다. "누나, 비지 먹어?" 했더니 "응, 세월이 약인 갑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라는 말로 되 받아칩니다. 눈물이 돌았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의 비지 식중독 사건은 비로소 가족의 추억이 되어 명절 때마다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생각 조차 금기시되었던 뽀글뽀글 비지찌개가 드디어 우리 식구의 식탁에 올라 별미의 정식 음식이 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누나, 이번 가족 모임 두부집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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