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김춘식 Jun 06. 2020

키 170의 소원을 이루다

내키 168cm, 우리 집안은 40세까지 성장판이 안 닫힌다는 가족들의 검증되지 않은 설(?)에 평생 꿈에도 소원은 매년 건강검진 키재기에 170cm을 찍는 거였는데 검진 때마다 편법으로 은근살짝 뒤꿈칠 들어 보는 무리수를 두어 보았지만 여태껏 한 번도 170cm을 찍은 적이 없었다.
마음속에 간절히 품고 있던 키 170cm의 꿈은 아주 많이 슬프지만 내 평생 이루지 못할 짝 사랑이었으며, 진짜 이보다 더 슬프고 간절한 짝사랑이 세상에 있을 까도 싶었다.
170이 넘었다면 아마도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인생역전의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과 상상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지나버린 오늘, 이제의 현실은 성장판의 문제가 아니라 168도 나날이 쪼그라들 것을 걱정해야 할 나이이니 170은 고사하고 세월이 무섭고 겁이 날 뿐이다.

열심히 지 x켓 검색을 했다. 키높이 구두. 며칠 고민 끝에 "구두 x라"라는 곳에서 아주 멋진 구두 하나를 발견했고 며칠 뒤 아주 흡족한 미소와 함께 내 발에는 멋진 구두가 신겨 있었다.
굽 4cm + 깔창 3.5cm로 총 7.5cm의 높이로 단숨에 7.5cm 고도 상승이 되어 168 + 7.5 = 175.5 cm로 순식간에 신분상승 소원을 이룬 신나는 인생을 맞이 한 거다. 아주 적절하고 적법한 방법으로.

이때까지 170도 안 되는 키로 오염된 하층 공기로만 호흡하다 위쪽 장신들에게만 허락된 신선한 상층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은 혜택이었고 눈 아래 머리가 보이는 사람도 가끔씩 있으니 이 또한 뿌듯한 즐거움 중에 하나렸다.

근데 불편하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 일터 얻는 것이 있다면 버리는 것도 있더라. 저녁에 누우면 발 뒤쪽이 뻐근하고 계단을 탈 때나 장시간 걷기에는 앞쪽 솔림 현상으로 불편이 가중되는 부작용이 있던 것이었다. 아 ~ 오호라 이런!!.

수많은 여성들의 여전한 힐의 불편성과 다리, 발 건강에 나쁘다는 온갖 학설과 의학적 상식을 인정하고 공감하면서도 킬힐과 동거한다. 힐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득과 실중 말이 되는 득, 이쁘게 보이는 것에 대한 중독성, 달콤한 유혹이기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 절대 힐 못 버린다. 아니 버릴 수가 없다. 장담한다.

나도 지금의 내 구두를 못 버린다. 안 버린다. 평생소원을 한방에 이루게 해 준 고마운 이 구두를 버릴 생각이 없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신발 벗고 올라가는 회식장소는 거절이고 그런 것쯤은 친구, 동료분들의 배려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급 강하, 급 추락하는 기분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것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 줄 놓았거나 운이 없었거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