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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Sep 18. 2019

스마트 워치와 슬픈 중년의 시계

세계 유수에서 소문난 명품 가방 한 개 정도를 어깨에 걸어보는 것이 여자들의 로망이라면,  남자들의 로망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명품 시계를 손목에 차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모두 다 그런 것 아니지만). 무거워 손목 놀리기가 힘들고 시계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패션이거나 여름철 시계줄이 땀에 젖어 손목이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꿋꿋이 차고 싶은 그런 명품 시계를 가지고 싶은 욕망이다. 명품이라는 게 시계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 물품은 넘사벽으로 여겨지는 비용의 대가를 요구함으로, 월급쟁이로써는 앞뒤 물불 안 가리고 질러 버리는 사고를 치던지(아내에게는 언제나 그랬듯이 싼 것이라는 것으로 위장해야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아니면 그냥 꾹 참고 살아야 하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결국 비스무리 대안을 찾게 되고 그 대안을 통해 조금이나마 대리만족을 하게 되더라.



스마트 워치를 좋아하는 이유가 원하는 시계의 종류를 쉽게 변경할 수 있어 선호하는 모양을 비용에 연연치 않고 언제 어디서나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를 핑계 삼아 혼자만의 자기 합리화 과정을 통하여 스마트 워치를 손에 넣게 되었다. 요즈음 스마트 워치는 화려한 피트니스 기능을 덤으로 제공하니 비용이나 기능면에서 굳이 명품 시계가 부럽지 않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한 자가 검열을 통과한 것도 스마트 워치를 손에 넣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합리화하여 손에 넣게 된 시계를 차고 보니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되었다. 배터리를 자주 충전해야 하는 흔한 귀차니즘도 짧은 전자기기의 수명에 대한 실망도 아니었다. 시계 우측에 박혀 있는 날짜와 요일은 쉬이 본다는 사람이 있다면 새빨간 거짓말 아닐까? 즉 손목시계의 날짜와 요일 디자인은 우리 나이에 사실 무용지물이란 뜻으로 남들이 멀리서 보기에 멋져 보이게 하는 장식용 일것일 뿐이라는 거. 아무리 명품 시계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거. 이게, 이제, 드디어 시계에 대한 로망이 깨지는 순간이 아닐런는지. 시계는 멀리서 보기에 멋지고 잘생긴 것보다 아주 커서 시침과 분침 및 글자가 잘 보이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세월의 교훈이다. 매우 매우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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