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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Sep 03. 2020

국도를 느리게 달렸다.

무료도로 우선

내비게이션(이하 내비)이 없었을 적에 운전에 가장 큰 골칫거리는 상가가 결혼식장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상가와 결혼식장은 연고가 없는 지역이 대부분이라 출발하기 전 지도를 펴고 집중 공부를 해가도 막상 현지도 도착하면 길이 헷갈리어 우왕좌왕 하기 일쑤였다.


그런 불편함을 한방에 해결해준 게 내비였다. 내비의 존재를 알게 된 게 17년 전쯤 인 것으로 기억된다. 내비가 필수장비가 됨으로써의 작은 변화는 차 안에 전국지도책이 없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최단 거리로 길을 알려줌으로 지도가 필요 없게 되었고 이제 내비는 없어서는 안 될 운전의 도우미가 되었다. 더 이상 길치란 핑개가 통하지 않게 된 혁신적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내비라는 게 애석하게도 최단거리와 오직 달려야 하는 길을 알려 줌으로 매번 동일한 길에다 운전자의 여유도 없이 빨리 도착에만 목적을 맞추는 수단이 되어 운전의 맛을 아예 없애 버렸다. 50미터, 100미터의 축적 지도로 달릴 길만 알려주기에 어떤 길을 어떻게 달려왔는지 어떤 길을 달려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국 지도책을 내어 보면 축적이 커서 한 페이지에 길을 알려 주지 못하면 페이지 번호로 연결, 연결해서 목적지를 찾았고, 책대로 가다 길을 잘 못 들어 우연한 풍경을 보기도 하고, 고유 국도 번호도 기억하는 재미도 쏠쏠났었다.


한때는 내비가 나오고 얼마지 않아 내비의 단순 무료함에 옛날로 복고하고자 내비를 버리고 지도책을 다시 들고 다녔지만 급할 때는 결국 내비를 찾게 되고, 차 안에 지저분하게 책이 굴러 다닌다는 번거로움에 몇 개월 만에 GG를 치고 말았다.


가끔씩 차에 지도를 넣고 다니지는 않지만 대신 내비의 선택 기능을 이용해 달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느림과 낯선 곳의 운전을 시도한다. 내비 기능 중 무료 도료 우선을 선택하면 고속도로를 배제 한 길을 알려 주기에 유유자적 즐기기에 고만이다. 가을이면 황금 들녘, 과수원의 과수, 빨간 노란색의 단풍을 즐길 수 있고, 봄이면 이런저런 벚꽃, 매화, 산수유를 운 좋게 만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재수 없이 길을 잘못 든다면 더 많은 행운을 만날 수 도 있다.


휴가철, 대구에서 무료도로 우선으로 선택하고 아무렇게나 달렸다. 한가한 국도는 5분을 달려도 차 한 대 만날까 말까 하고, 이름 없는 휴게소에서 라면 한 그릇에 화물차 기사 아저씨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급할 것 없는 시간들에 바빴던 도시 생활에서 찾지 못한 감성을 잠시 찾았다.


라면과 김밥을 정성껏 차려주신 고마운 아주머니가 계신이 휴게소 다시는 못찾는다.


5분을 운전해야 겨우 차한대 만난다.


더운 뙤약볕에 농약 하시는 할부지, 할머니보니 노는 사람 죄송하단 마음이 저절로 든다


아직 이런 철공소를 볼 수 있다는 게 신기


또래오래, 맛은?


대구 능금은 어디가고 자두로 바뀌었다. 능금은 더 위쪽 지방으로 올라 갔다.


깨, 찬지름은 모두 도시 아들 딸 몫이 아닐까 추측


안동에 도착, 도산서원


국도선택의 끝자락이 되었다.

언제나, 늘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릴 수만은 없다. 빠름만이 능사가 아니다. 가끔씩은 걸어도 보고, 옆으로 세도 보고, 느리게도 가 보고, 길을 잘못 들어 보아야 비로소 못 본 풍경을 볼 수 있고, 우연을 만날 수 도 있다. 무료 도료 우선은 신의 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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