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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Dec 09. 2020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귤 한 상자로 생색내었다.(착한 코스프레)

직장이다 모임이다 하여 만나는 주변 인간관계에서 고마웁고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연말, 이때쯤  되어 일 년을 돌아보면 늘 주는 것보다 받는 게 과잉으로 넘쳐난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 고마움을 쉬이 넘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전화 한 통에도 정성이 필요하고 귀찮은 일이기에 잊거나 급한일에 쫓기게 되어 잊는다.


L친구가 해군에서 두 달 전 전역을 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별을 달겠다 SSU 훈련까지 받고 열심히 군생활을 했지만 학군장교로써는 별이 힘든 모양이었다. 제주도 출신이라 전역을 하고 제주도 농장에 부모님과 있다 하여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풀린 애기 보따리가 제법 컸다. 당분간 일지 모르지만 지금 귤을 한다 했다.



귤이라는 말에 연말이면 내게 행복을 준 사람들이 한분 두 분 떠 올랐다. 그래 친구도 돕고 귤 한 박스라도 보내자.  일타이피,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다. 전번에 사과 보내기에 이은 두 번째 계획이었다. 그런데 보내야 할 분들이 참 많기도 하여 기준 잡기가 어렵다.


후배 L, 친구 L, 옛 동료 L, B 씨, 아라온 운영 S사 등의 주소를 제주도 L군에게 보냈다. 수량이 많아지니 쪼끔 금액도 높아간다. L군은 공짜로 귤을 보낸다기에 평소 "농부의 땀은 공짜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었기에 극구 사양했는데도 막무가내다.


제주도라 택배가 하루 더 소요되어 주문 한 월요일에 삼일을 더 하여 오늘 수요일에 도착하는 날이다. 오늘 오후의 깨톡에 호떡집 마냥 불이 났다.


"고맙다. 잘 먹겠다. 맛 나다"라는 폭풍 도착 소식이다. 군자가 아니어서 기부는 하지 못했지만 기부자의 좋은 느낌도 이 뿌듯한 기분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결코 비싸지 않은 귤 한 상자 받는 분들보다 내가 더 높은 가치를 받지 않았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은 그분들이 진짜 귤이 맛나고 잠시 행복했으면 L군이나 나는 더 바랄 게 없을 거다.

마음이다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연말에 아직  챙겨야 분들이 많다. L 양, K님, K군, P군. Y작가님, K교수.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어서 빨리 첫눈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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