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한 세상
몇 달 전 포항에서 있었던 한 사건이 소개되어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죠. 사거리에서 회전하던 트럭이 도로에 쏟아낸 병들을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 치우는 일을 도운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라 더 뿌듯한 사건이라 화제가 되었고 감동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좋게 빗대어 인터넷상에서는 "그래도 살만 한 세상"이라 합니다.
도로 한가운데 학생들이 몰려있는 이유
지난주 일요일 부천에 일을 보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한산한 외곽 도로라 속도를 낼 수 있어 80킬로 정도로 꽤 빠르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 차선을 막고 있는 게 언듯 보여 추돌 사고인가 싶어 급 제동을 하며 차선을 변경하고 시부렁거렸습니다.
아 그런데 추돌이 아니고 1톤 정도의 트럭에서 겹겹이 포개진 철 구조물이 차선을 막고 있고, 겹겹으로 되어 있는 구조물을 운전사 한분이 힘겹게 도로 밖으로 옮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찰나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갈등으로 요동 쳤죠. 결론은 그냥 지나 쳤습니다. 대부분 차들이 80킬로 이상의 속도로 달렸기에 안전하지 않다 판단했습니다. 운 없으면 2차 사고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한 거죠. 두 번째로는 포항 학생들에 견주어 코스프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보도에 안 나오는걸 보아 후속 사고는 없었는 듯하여 다행스럽습니다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운전사분에게 대한 미안한감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자책이 많이 듭니다. 가끔 남들보다 조금 많은 오지랖으로 잔소리를 듣는 편이지만 정작 오지랖이 필요할 때는 숨은 비겁한 사람이 된 거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던 일이 새빨간 거짓말인 줄 그제 야 알았습니다. 그들 의인들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살만한 세상의 일원이 된다는 거,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거 하는 게 참말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