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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Apr 14. 2021

지갑을 주웠어요

트라우마로의 해방

오래전 좋았던 기억을 들춰내어 추억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힘들었던 군대 이야기도 추억이란 포장을 씌우면 신나는 이바구 거리로 소환이 가능하는 논리가 아닐까 싶다.


보슬빈지 이슬빈지 제법 많이 내리는 비의 감성에 우산을 받쳐 들고 터벅 걷는 중  광고전단지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사각형 물체가 아스팔트 바닥에 눈에 띄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비에 젖은 바닥의 가로등 비침에 광고 전단지와 구분할 수 없는 아스팔트 색에 은폐된 물건이었다.


44, 5여 년 전 대부분 가난에 지지리도 못 살 때다. 수성 국민학교로 기억되는 운동장에 가을 운동회가 열려 만국기가 펄럭이던 운동장에 까만 반바지와 흰색 상의 운동복을 입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는 순간 운동장 바닥에 이쁜 물체가 보였다. 무심코 집어 든 물체는 분홍색 꽃무늬의 여학생 지갑이었다. 지갑이라는 자체가 손을 떨리게 했고, 지퍼를 열어 보고는 더 떨었다. 꼬긴 접은 거북선 이순신 장군 지폐 500원이 보였고 분실한 학생의 상심은 스쳐 지났지만 갈등이랄께 없었다. 가난했으니까.


이후 가끔씩 바닥에 물건을 볼 때면 트라우마가 생겼다. 40년이 넘었지만 유달리 이 기억이 또렷하게 나는 이유를 자신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억을 안고 살았다. 비 오는 날의 사각형 물체는 분명 지갑이었다. 또 이렇게 생각하기 싫은 오랜 기억이 끈질기게 소환될 줄이야.


현금 100만 조금 넘게, 신용카드 한 장, 주민증 그리고 명함이 있었다. 경찰서 전달할까? 귀찮을 텐데, 우체통? 현금은 어떻게 하나? 이리저리 생각하다 출근 해 업무로 잠깐 잊다가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 명함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잊으신 분은 전화에 놀라고 반가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직원에게 알렸더니 직원들은 걱정이 많았다. 혹시 현금이 부족하다 하면 어쩔 텐가? 겁이 났다. 경찰서 갔다 줄걸 그랬나? 돌려주지 말걸 그랬나? 문자로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 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확인 문자를 드렸다.


타인의 물건을 습득해서 돌려준다는 것은 선한 마음 이외에는 귀찮은 일이다. 오래전 휴대폰을 주워 돌려준 경험에 이미 돌려주는 과정에의 귀찮음과 자발적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는 터였다.


분실자분은 당장 오시겠다는 거, 바쁘지 않다면 다음날 아침에 보자 했다. 부천에서 인천 송도까지 오셨다. 연락처용 명함 한 장 뻬고는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돌려 드렸다. 카드 한 장이 없다 해 속으로 긴장하고 있었는데 지갑 깊숙 이서 찾았다. 쫄았는데 다행이었다. 사례금 10만 원 주신다길래 거절했다. 받는 순간에 마음이 변질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갑 습득과 반환의 일로 바라는 것은 주변의 칭찬과 답례가 아닌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45년 전의 거북선 지폐를 사용하고 남은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가 말끔히 사라지길 바라는 건 뿐인데 과연 이 번에는 캐캐묵은 마음이 치유될지는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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