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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Sep 29. 2021

조금 운이 없었고 억세게 운이 좋았던 날

살다 보면 그저 그런 일상의 날이 대부분이야. 그래서 운이 없다는 날과 운이 있다는 날에는 "더럽게 재수 없네""오! 재수"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


그날은 전라도 광양이란 곳의 출장이었어. 작전보다 중요하다는 의전 출장일을 무사히 마치고 인천으로 복귀만 남았지. 직장인에게 있어 출장이란 게 알다시피 조금 빨리 마쳐진다면 남은 시간은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보너스 같은 시간이야.


부산을 들렸다 올라가려고 부산행 차를 얻어 탔어.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돌발이 차 운전자에게 발생한 거야. 사람의 인명과 관계된 긴급한 돌발이었어. "어쩌지?" 밥때는 지났는데 눈치 보여 밥 묵고 가자는 소릴 할 수 없는 거야. 계속 긴급한 전화는 이어지지. 배가 많이 고팠지만 비틀고 들어 갈 틈이 없었어. 도리도 아니었고.


부산역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내렸어. 그때 시간이 3시 10분 정도. 3시 35분 정도의 기차기를 탈 수 있었지만 넉넉히 배를 채우자 4시 23분 차로 예매하고 근처 역내 분식점으로 갔지.


조금 운이 없는 일은 여기서 일어났어. 보통 부산역에서는 잔치국수나 어묵을 먹어. 근데 워낙 배가 고파 맛난  먹어 보자는 생각에 고급 9000원짜리 냄비 우동에 초밥 세트를 주문했지. 주문품이 나왔는데 웬걸 허겁지겁 국물 한술에 고기 냄새가 입안 가득 퍼지는 거야. 머선 일이고 싶어 냄비 속을 휘저어 스캔을 했더니 분홍색 쏘시지 4조각이 발견된거지. 18  고기  감별 달인 이거든. 고스란히 숟가락을 놓았지. 초밥 3개만 먹고 나왔어. 할머니께는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기  먹는 사람이라 귀띔을 하고 말이야. 그냥 잔치 국수를 먹을 껀데.


분홍색 쏘시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4시 23분 발 기차는 6번에 정차해 있었어. 코로나도 겁나고 해 특실 4호 혼자 앉는 4A석으로 끊었어. 기차를 타자마자 기차 안이 어두운 거야. 청소 아주머니가 아직 불 켤 때가 아니라 했어. 4호에는 혼자였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열심히 폰질했지. 4시 23분이 되었어. 나 밖에 없는 4호실에 한분이 오시더니 자기 자리라 하는 거야. 혹시 잘 못된 호실 아니냐고 화를 내며 승차권을 보자 했어. 4시 38분 발, 그때서야 불이 꺼진 이유, 4호실에 혼자였던 이유가 머릿속을 스치는 거야. 깜작 놀라 옆 쪽을 보니 똑같은 기차가 보였어. 빛의 속도로 가방을 챙기고 냅다 달렸지. 4시 23분에 타자 마자 문이 닫혔지. 1분 지연 출발. 6번이라 여겼던 게 7번 홈이었던 거지.


텅 빈 4호에 오신 그분이 하필 내 자리 4A, 그 시간이 하필 출발 시간 4시 23분. 1분 지연 출발. 우연이라기에 너무 맞아떨어지는 상황에 등골 오싹 소름이 끼쳤어. 기차를 잘못 타면 그만한 댓가가 따르는 거 알지? 시간, 비용 그리고 자괴감이야. 언제 한번 잘못 탔다 광명에 내리 못하고 서울역까지 갔다 기차비, 서울역서 광명역까지 택시비에 인천 도착 시간이 자정을 훌쩍 넘겨 고생한 거 치면 그분이 구세주였던 셈이지.


아무 생각 없이 7번 홈을 6번 홈이라 의심 없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과 불이 없는 때의 평소와 다른 환경에 한 번 더 생각해볼 총기가 없는 걸 보니 나이가 들어가긴 한 모양이야. 운으로 위기를 극복 한 날이자 운이 없었던 날로 냉탕 온탕을 겪은 드문 날이었어.


하여튼 어여 빨리 운이 좋거나 나쁘거나가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을 편히 즐길 수 있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어. 갈 때도 많고 할 것도 많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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