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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Nov 08. 2022

2000년 LA에서, 2022년 연안부두에서

23년 만의 만남, 그리고 동기들

빛바랜 LA 다져 스타디움 입장권 2장, 그때 우리는 시즌 표를 가진 미쿡 사람에게 운 좋게 3루 쪽 표 두 개를 62불에 구입했다. 꼭 박찬호가 등판하는 다저스 구장을 보고 싶다 L에게 막무가내 졸라더니 흔쾌히 만들어준 일이었다. 그날 기억은 이런 바람에도 박찬호는 패했다. 그래 그날이 2000. 5. 24. LongBeach 출장 중에 있었던 감격적인 일이었다.


책 갈피서 꺼낸 그날 2000. 5. 24 박찬호와 함께한 흔적


한 달 전쯤 C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L이 인천에 온다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물어본다. LA에 사는 L이다. 당연하게 그러겠다 했다. 그동안 몇 번 국내로 온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인연이 안 닿았는지 만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번엔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아침에 출근하며 아내에게 20여 년 전 미쿡 출장이 기억나냐고 물었더니 "한 달 출장?"이라며 고맙게도 기억해 준다. 국제통화가 어려웠던 시절에 집까지 초대해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게 해 준 그 동기를 만난다 자랑질을 하고 특별한 출근길을 나섰다.


하필 무궁화호 탈선 사고가 23년의 만남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탈선사고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줄은 예상을 못했다. 6시 반에 만나기로 한 연안부두에서의 약속은 하염없이 지연되어 L은 9시 넘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깟 두세 시간은 설렘에 별반 장애는 되지는 않았다.


L이 왔다..... 머리카락 수는 많이 줄어 보였고, 흰머리카락의 비율이 꽤 늘었지만 얼굴의 모습은 23년 그대로다. 보이는 것과는 달리 세월이야 흘렀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대로 일 테다. 남자끼리라 쑥스럽긴 하지만 미쿡물 먹은 변호사답게 꽉 포옹해준다. 감회다. 감격스럽다. 감성쟁이는 눈물이 슬쩍 고인다. 세월은 역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우리들 이 사는 게 그런 거다.


모인 동기들 모두 소주 한잔 맥주 한잔을 빠르게 돌렸다. 23년 만이라 했더니 옆자리 앉은 해경 국장 L은 한술 더 떠 졸업 후 처음이라 더 좋아했고, 선박 항해사에서 대한항공 기장이 된 K와 한진해운에서 장렬히 퇴선 한 C와 또 다른 물류 대표이사 L은 L과의 특별한 인연들의 썰을 풀었고, 도선사가 된 J는 10시에 도선이 있다 음주도선을 할 수 없다며 소주에 고문 중이라 웃기기도 하며, 만남의 멋, 정을 더해갔고, 추억을 안주 삼아 갔다.


L은 멋진 말로 그랬다. 지금 하지 않는 것은 이제 미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 번의 기회를 사라 지게 하는 거라고. 한 번의 기회를 잃기 전에 지금 서로 사랑하고, 하고 싶은 싶은 거 당장 하라고.


점점 많은 소주병은 비워갔고 어느덧 시간은 열 시가 넘었다. 나름 나 답지 않게 과음을 했다. 대리를 부르고 자리를 떠야 했다. L, L, L, K, J, C, K는 언제 다시 이 조합이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L과의 만남이 다시 23년이 걸린다면 다시 만나는 나이가 70이 훌쩍 넘었을 꺼란 생각에 조금 울컥한다. 그런 L은 마음을 아는지 아까보다 좀 더 심하게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준다. 그렇게, 이렇게 옛날을 기억한 7명은 인천 연안부두에서의 짧은 만남 후에 후일을 도모하고 서로의 갈길로 걸음을 돌렸다.


30여 년의 세월이, 세월이 흘렀다 해도 남자들의 오랜 기억의 추억과 우정 그리고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변 할 수가 없다. 절대의 명제다. 우리의 친구란 그거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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