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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Sep 27. 2019

아직 퇴사를 못했다

무엇을 하느냐는 자기 적성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요즈음 갈수록 사회가 복잡 다양 해지고 정보의 범람시대에 사는 직장인들에게는 직장 생활이 어렵고 적응하기 매우 어려운 모양이다. 직장 생활의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 질리 없겠지만 지금의 20~30대 젊은 층이 여기저기 퇴사 병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 그 들의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우후죽순 발간된 퇴사를 부추기는 책들이 적지 않은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그렇게 어렵다는 직장생활을 한결같이 한해도 쉼 없이 근 30년을 해오고 있고 아직 다녀할 기간이 찮게 남았으니 고행, 수행의 길이라 여길라 치면 제법 사리가 몸에 생겨 날만 하지 않을까 싶다.    

       



퇴사를 못한 우리는 억울하다.  

   

옛날 우리가 사원, 대리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랬지만 언론과 대중매체들의 직장에 대한 사뭇 한결같은 편견은 부장으로 대표되는 꼰대 상사가 있어 부하직원을 괴롭히고, 상하 수직의 조직이 개인의 창의성 발휘를 통제하는 아주 못 땐 시스템을 가진 나쁜 곳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반 직장에서도 승진, 영업, 그리고 프로젝트 성사까지 성취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에도 늘 꿈을 억압당하는 사람들 일 뿐 아니라 상사로부터 갈굼을 당하는 불행한 존재로 낙인을 찍혀 결국 가정, 가족을 위하여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참고 희생되어야 할 존재임에 퇴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불행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좋은 부장, 멋진 부장이고 싶은데    

 

의문이 생긴다. 과연 우리는 진짜 불행한 직장 생활을 해오고 있으며, 젊은 사원, 대리를 달달 뽁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정말 병적인 꼰대의 존재인지를?     

어느 시대, 장소를 불문하고 세대차란 것으로 서로를 아우를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한 어떤 조직에서나 비교적 나이가 많은 사람이 꼰대가 되기 마련임으로 꼰대란 필연적으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는 존재 일 것임으로 지금의 꼰대가 사라지면 그다음 세대가 인수받고 또 그다음 세대로 인수되는 지속적인 존재 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꼰대란 나쁠 수도 있지만 세대차에서 오는 갈등 문제만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그 들의 경험과 연륜을 젊은 패기와 조합, 협업되어 일정 부분 창의성 있는 멋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 아마도 세대를 아우르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울 터 단지 희망사항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젊은 진상도 있다.     


모든 부장이 꼰대가 아닌 듯이 꼰대로 누명을 쓴 세상의 모든 부장이 지켜본 그들 젊은이들 중에도 좋지 못한 진상이 있다. 부장 꼰대가 있는 수만큼. 개인주의만을 앞세워 팀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기본이고, 일을 못하면서 잘하는 척 흉내를 내며 상사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처사들, 책임의식 없이 문제만 일으키고, 행여나 싫은 소리 하면 못 살겠다 퇴사를 쉽게 운운하는 얌체들. 그 들은 “Latte is horse”라 부장을 폄하하고 비난하지만 반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 있지 않으려나.     




무엇을 하느냐는 자기 적성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     


퇴사란 월급쟁이의 마지막 보루이자 히든카드라 멋지게 사직서를 던지고 상사에게 깔보는 듯한 찌릿한 눈 길 한번 맞춰 주며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은 한 맺힌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수십 번 다짐해봐야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경우는 진짜 드물지 않나.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직장생활이란, 퇴사란 나의 성격과 성향이 조직에의 적응과 적성에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음으로 결국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일을 하던지, 귀농, 귀어를 하던지, 창업을 해서 사업가로 훌륭하게 성공을 하던 지는 본인이 선택해야 할 개인적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다른 분야에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현재의 죽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인터넷 매체를 빌어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진 것처럼 처절하게 호소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어떤 분야, 누구 이건 간에 행복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단점만 보이던 회사가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직장 생활 30여 년에 직장을 세 번 이직했는데 직장을 옮길 때마다 다닐 때는 그렇게 단점만 보이던 회사가 퇴사를 하고 나니 장점만 보였고 새로운 직장에서 다시 단점을 찾기 시작하였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강도가 이직 후 뚝 떨어지더니 어느 순간 점점 강도가 세어지더니 아이러니하게도 순식간에 이전의 회사와 동일한 수준까지 복귀되더라. 그래서 또 불평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서는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을 취미처럼 속 편하게 하고 신명 나게 웃어 가며 월급을 받을 수는 없다. 기업은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이상적인 욕구를 우리에게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므로 본인이 원하는 꿈을 펼치며 살고 싶다면 버릴 것은 버리고 어느 정도 세상과 타협을 해야 하는데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오늘도 나는 상사와 언쟁 후 분에 못 이겨 사직서를 던지고 남은 사람들에게 모양새 나게 복수를 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리 하지 못 하고 씩씩거리며 삭이고 참고 참았다. 프리랜스나 창업을 하여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도, 귀농을 한다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에,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그릇도 안 될뿐더러 용기, 추진력, 모험심, 대인관계, 판단력, 결단력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면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기에 다소 도 넘는 열 받을 일 많고, 하루하루 욕을 바가지 먹고 있지만 “참을 인(忍)”을 새겨 가며 아직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이고 여태 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리랜스, 창업, 농사, 어업, 직장 생활 모두 남의 밥상 콩알이 크게 보이지만 각 분야의 친구들을 모아 놓고 물어보면 부창부수 힘들 긴 다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결국 어디를 가나 내게 조금 더 적성에 맞고 잘할 수 있는 것을 개발하고 묵묵히 전진하면 되는 것이지 퇴사라는 시류에 휩쓸려 퇴사 병에 걸려 괴로워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싶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고 다만 빠르게 흘러갈 뿐이다. “       

 

그나저나 부장은 꼰대, 회사는 언젠가 퇴사해야 하는 나쁜 곳이라는 누명을 벗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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