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어른이다.
벙커 연습장에 초딩으로 보이는 녀석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만 공을 툭툭 잘 칩니다. 제법 폼을 갖춘 것을 보니 전문적 선수로 보입니다. 한수 배울까 싶어 쓰윽 물어봅니다.
"선수냐"
"아~, 아직 선수는 아니고 선수 지망생입니다"
눈이 마주친 녀석은 붙임성 있게 보인 첫인상에다 친화력도 갑인 듯하여 말꼬를 트자 꽤 긴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아이고, 공부를 하지 그 어려운 운동을 하노. 공부는 중간을 해도 먹고사는 데 운동은 우리나라서 10등을 해야 겨우 먹고산다 아이가. 힘들어서 우짤래. 힘들다 진짜."
오호 그런데 생각도 못하게 당돌하게 답이 돌아와 당황하게 됩니다.
"공부도 잘합니다. 그런데 골프가 너무 좋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겁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하고 싶은 거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습니다."
".............................................................."
그때부터 서로 티격태격입니다.
"아니 그래도 골프는 취미로 하고 공부를 해도 되잖아."
"하고 싶은 거 할래요."
"엄빠가 얼마나 힘든데. 골프는 돈이 많이 들고 성공하기 너무 힘들다 말이지."
"부모님이 하라고 밀어주십니다. 하고 싶은 거 해야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잖아요. 후회 안 하려고요, 아저씨"
"........................."
"그럼 하고 싶은 거 취미로 해, 지금은 재미있어도 직업이 되면 무지 싫거든. 아저씨도 지금 직장 겁나 다니기 싫고, 골프는 취미라 재미있단다. 쉬운 공부를 하고 골프는 지금 배워 놓았다 나중 취미로 하면 안 되겠나"
"저는 골프가 쉬워요."
녀석은 또박또박 한 마디도 안 지고 대꾸 중입니다.
"이번에 한 달 반정도 해외 전지훈련 갑니다."
"어디로 가는데?"
"베트남 갑니다. 7년 뒤에는 KPGA에서 프로 선수로 뛰고 있는 지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니 이름 뭐꼬? 내가 꼭 기억을 할게. 전지훈련 가면 2, 3천 은 들 텐데 이왕 가는 거 부모님 생각해서 열심해야지."
"네, 홍 xx입니다. 아저씨는 제가 몇 살로 보이세요?
"초등학생 5학년 아이가."
"맞습니다. 아저씨는 어찌 맞추어요?"
허허허, 대화를 복기해 보면 가관입니다. 꿈나무에 격려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초딩 5학년이 중년을 설득하고, 바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더 살갑게 계속되었고, 이에 태세를 전환해 골프로 성공해라 덕담까지 해주고 이름을 꼭 기억하겠다 약속했습니다.
5학년 꼬마가 대견 하다해야 할지, 사는 것을 배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초딩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습한 벙커 모래를 고무래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갔습니다. 여기서 연습 후 모래를 정리하고 가는 사람 처음 보았습니다. 마무리까지 감동을 준다 해야 하나요. 이럴 때 꼭 하고픈 말이 "엄빠분들 자식교육 잘하셨다"입니다.
오늘 기온이 16도로 완전 봄날에 비견되는데요. 따스한 날 만큼 한 수 배우고 가벼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나 봅니다. 하고 싶은 꿈을 찾아 가보는 거요. 아직 우리의 "전성기(리즈)", "화양연화"는 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