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지난겨울입니다. 집 구석진 곳에서 소리가 몇 일째 납니다. 처음에는 소리가 낫다 안 낫다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습니다만 반복 거슬림에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보일러실 환기구를 통해 비둘기가 추위를 피해 들어왔습니다. 집에 들어온 생명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신념이기에 가족의 양해를 구하고 그냥 두었습니다. 그럭저럭 그렇게 겨울이 지났습니다.
시끄럽다는 적은애의 불만과 냄새가 난다는 사모님의 민원에 다시 보일러실 확인을 해보니 알 두 개가 깨져 있고 새똥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새똥을 깔끔히 치우고 보일러실 구석에 플라스틱 상자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활동 구역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럭저럭 또 봄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구구 푸더덕 소리에 둥지를 확인해 보니 알이 두 개 있습니다. 이게 부화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얼마 후 신기하게도 두 마리의 새끼가 태어 낫습니다. 아파트 보일러실에 부화라니요. 7월이 되어 어린 새의 성장은 빠름에 따라 배설물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하였습니다. 여름 철이 되어 집안에 새똥 향기가 퍼져 갔습니다.
8월이 되어 기온이 30도가 넘어갈 즈음 적은애와 사모님의 민원이 폭발합니다. 당장 어린 새를 처리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내가 보아도 새똥 냄새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고뇌가 또 시작되죠. 버리면 죽을 게 자명하고 두자니 집안 냄새를 처리할 방안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비둘기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이소까지 약 40일이 소요되고 놀랍게도 유해동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행인 것은 유해동물이라도 강제 생명을 학대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적은애와 사모님과 협의를 시도하였습니다. 지금 두 마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두 마리 이후 계속 보일러실을 개방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린 새를 지금 방치하면 죽는다는 점, 비둘기가 유해조수 인 점, 새똥으로 인한 악취를 계속 감수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소는 보장하되 보일러실을 폐쇄한다는 합의를 하였습니다. 지금의 둥지는 최대한 재 정비를 하여 냄새를 최소화했습니다. 그럭저럭 인내로 버틴 냄새와 함께한 비둘기는 무럭 자랐고 드디어 8월 17일경 2마리는 이소를 하여 세상 속으로 날아갔습니다.
둥지로 사용한 플라스틱 통을 씻고 주변을 정리한 후에 통로를 마침내 봉쇄하였습니다. 며칠간 비둘기 네 마리는 보일러실 주변을 맴돌았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유해동물의 번식에 대한 죄책감도 있기는 했습니다. 유해동물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 해서 알을 해코지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엄마, 아버지, 아들, 딸 비둘기 중 어느 비둘기가 박 씨는 물어다 줄까요? 만약 물어다 주면 받아야 할까요? 이리저리 세상의 법을 뒤져 보아도 처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네요. 세상에 잘못한 것 같아 좋아할 수도 기뻐할 수 없어 찝찝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