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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Feb 06. 2020

배(Vessel) 이야기 2

아날로그 통신

사무실 전화 소리가 울립니다. 아라온이 남극 탐사 항해를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전화 하시는 분은 아라온에 승선하여 남극 연구항해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원 가족이라 합니다. 깨톡 연락이 안 되어 혹시 사고가 발생한 게 아닌가 걱정되어 확인해보려 한답니다. 종종 젊은 선원과 연구원들의 가족으로부터 아들,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전화를 받습니다.


요즈음은 세상 끝 곳곳까지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 없으니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면 걱정하는 것도, 대형 해난 사고에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 국민이기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만 아쉬울 때도 많습니다. 요즈음에는 군대에서도 SNS가 가능하다죠.
 
90년 초, 대학을 졸업하고 배에 올랐습니다. 운 좋게 H사에 미국과 한국을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컨테이너 선박에 배승 되어 40여 일 만에 정기적으로 부산항 기항을 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 국내 컨테이너 부두 공급이 부족했던 탓에 대부분의 선박들이 북항 묘박지에서 닻을 내리고 입항 순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묘박을 하면 무선 전화기가 없던 그때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부산 무선을 경유하는 것이었습니다. 해상 비상 주파수 16번으로 부산 무선의 교환을 부르고,
"부산무선, 부산무선, 아라온호입니다"
"아라온호 채널 42번에 대기하세요"
부산 무선의 여자 교환원은 대기 중인 선박 순서대로 호출을 하여 주었고 선박에서 요청한 전화번호를 유선으로 연결한 후 해당 선박에게 재차 무선으로 이중 연결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의 문제점은 대기 선박이 많으면 장시간 목이 터져라 부산 무선을 애타게 불러야 했고, 연결된 전화가 무선 일반 채널이라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선박에 다 들린다는 것입니다. 가끔 심심하면 애교 수준의 도청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승선을 하면서 통신이 안되어 안타까웠던 것은 묘박지에서 출항하여 입항 대기 중 약속된 접안 일정이 계속 지연되어도 가족에게 변경된 일정을 알려줄 방법이 없어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가족들과 선내에서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항해 중에는 지금 퇴역이 얼마 남지 않은 위성전화 인마셋 F-77보다 더 오래된 F 이용하여 가족들과 통화할 수 있었는데 기억으로는 통신료가 1분에 5천 원이 넘었으니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면 사용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값싼 대체 통신으로 통신장이 모스 부호를 이용하여 문자를 수발 신하는 전보였음으로 항을 출항하면 다음 항 입항 시까지 선원이나 가족들 모두 서로 무소식이 희소식이었습니다.
 
지금 아라온호는 일반 화물선과 유사하게 남북극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인터넷을 사용하여 SNS와 화상 통화를 자유롭게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비가 구축되어 깨톡과 원격 의료 진료 서비스도 가능합니다. 때로는 극지에서의 발생하는 구조, 사고 등의 정보를 정식 보고서보다 네이버, 다음에 검색해보는 것이 더 빠를 때가 있어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똑똑한 통신 서비스를 두고 "부산무선"을 부르는 옛날의 아날로그 시대로 돌어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세대에 맞게 바꾸고, 개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 사회의 역할이지만 조금 돌아서 천천히 잠깐 멈추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남극권, 북극권에 진입하면 전화기를 꺼고 조용히 눈을 감아도 좋습니다. 짧은 시간 이나마 복잡한 문명세계와의 단절을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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