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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Feb 13. 2020

배(Vessel) 이야기 3

동기 다방

며칠 전 아침 출근 준비로 분주할 즈음 딸이 아부지를 찾길래 아침부터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어 보았더니  아부지께 소중한 것이라며 반쯤 뜯겨 나가 헤어진 공책 비슷한 것을 건네주었다.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되었다 했다.
 
표지를 보는 순간 깜작 놀람과 잠시 잊었던 오랜 기억이 소환되어 멈짓 할 수밖에 없었다. “동기 방명록 모음집”이라는 것이었다. 기억났다. 4년 동안 한 솥밥을 먹으며 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던 우리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 되는 데 취업 이랬자 해양대를 나왔음에 해운회사에 소속되어 배를 타게 되는 것이었다. 배를 타게 되면 일반 직장인들과 다르게 일과 후에 만날 수 없는 특별한 망망대해 환경이었기에 휴대폰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칠대양에 흩어진 친구들이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 특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워낙 해운 경기가 좋은 시절이라 3등 항해사, 기관사가 턱없이 부족하여 배를 타게되면 기본이 한 배에서 10개월 근무였고 대부분 그 이상이 되어야만 휴가를 받을 수 있어 친구끼리 휴가기간이 겹치는 게 사실상 어려워 운 좋아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근황 정보를 어떻게든 알려야 했기에 지금 인터넷 게시판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를 정해 만나는 것이 대안이었다.

게시판

그  약속된 장소가 카페, 커피숍으로 불리지 만 그때는 다방이란 이름이 익숙하던 시대였다. 숱한 ROTC 반지가 영구 보관되었던 광복동 전당포 거리와 유나 백화점 중간 정도에 위치한 곳으로 “그린비”라는 이름을 가진 다방이었고 우리는 그 다방을 "동기다방"이라 불렀다. 게시판 격인 공책을 “그린비” 계산대에 보관해 두면 휴가때 다방을 들리는 녀석들이 “나 휴가(연가) 요”라고 신고하면 공책에 적힌 연락처로 연락을 하던지 아니면 휴가가 갈리어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근황을 적어 두는 방식으로 그 당시로는 최신 아날로그 게시판인 셈이었다.


그린비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가당치 않게 우습게 넘길 일들이었지 만 막 졸업 한 사회 초년생들의 순수함과 동고동락한 4년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열망이 담긴 기록이 아니었을까 싶어 그 시절의 동기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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