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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Mar 12. 2020

배(Vessel) 이야기 4

한 배를 탄 사람들

선원이 배를 타 제한된 좁은 공간에서 보내는 승선기간은 휴가 중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약 두배 정도이고, 제한된 공간에서 일과 후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하지 않기에 무료하고 심심한 날의 연속입니다. 국방부의 시계가 돌아가 듯 배의 시계도 얼른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 모릅니다. 무료한 승선 생활은 아마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대적 변화에 영향 없이 별반 다를 것 없는 환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래전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특별한 기억들을 소환입니다.   선내에서 쉽게 시간을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이 비디오 보기였습니다. 비디오란 지금의 동영상 파일과 달리 사각형 테이프를 재생기에 넣어 영상을 재생하는 방식입니다. 재생기의 핵심 부품은 재생 헤드였는데 워낙 많은 사람이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무한 반복으로 돌려보기를 하다 보니 재생 헤드가 심하게 오염되거나 마모 진행이 빨라서 영화를 보는 도중에 화면의 가로로 전파 줄이 한두 줄 생기기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화면 전체가 줄로 가득 차게 되어 치지직 소리와 함께 안타깝게도 시청불가가 됩니다. 줄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의 적정시기에 별도의 하얀색으로 만들어진 청소용 비디오 테이프에 액체 두서너 방울을 투입하고 헤드를 세척해야 했습니다. 예외 없는 머피의 법칙에 따라 영화가 절정에 이를 때 문제가 발생하여 사람들을 꽤나 화나게 만들었고, 세척도 반복하다 보면 헤드의 수명이 다하여 세척 테이프를 돌리고 돌려도 물리적 한계에 달하여 재생 불가가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신제품이 올라올 때까지 긴 시간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비디오 재생기의 수리 능력을 가진 3등 기관사와 양질의 비디오 테이프를 근접 부두에 정박 중인 한국 선박의 것과 물물 교환을 담당하는 3등 항해사의 능력에 따라 긴 항해가 윤택하기도 하고 폭망 하기도 했습니다. 간간히 비디오 독과점을 대체하여 닌텐도 슈퍼마리오 게임 등이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때의 선내 활동에는 비디오 보기, 게임 및 간단한 오락들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함께 한자리에 모여 생활과 삶을 공유하고, 즐기며 유대를 강화하는 진짜 "한 배를 탄" 생사를 같이 한다는 동업자 정신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변했습니다. 휴게실 중심의 활동이 개인생활로 바뀌어 선원들이 침실 외부로 나오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카세트 테이프는 동영상으로 바뀌어 공유 폴더에 차고 넘쳐나 각자의 침실에서 보게 되었고, 일반 선박에서도 인터넷과 SNS가 가능해짐에 따라 선원들이 화상통화와 캐톡을 하며 개인적인 시간을 홀로 보낼 수 있음으로 일과 시간 후 모일 거리와 공유해야 할 정보가 사라 졌습니다. 더군다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주류 제한 규정이 적용됨에 따라 음주 문화도 바뀌게 되어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가기에는 시대적 흐름에 맞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래전처럼 카드놀이에 맥주 한잔을 곁들여 고립성에 대한 고단함과 무료함 달래고 서로 위안하던 시대는 이제 우리의 옛 기억으로 만 남았습니다. 그러지만  "한 배를 탄" 우리들 이기에 동료의식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선원은 “한 배”를 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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