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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Apr 05. 2020

사진이야기 2

풀떼기 사진

나들이가 힘들어 집콕으로 뒹굴뒹굴하다가 해질 무렵이 되자 기다렸듯이 급하게 두어 시간 전에 충전해두었던 건전지를 쨉사게 사진기에 장착하고 아파트 앞 화단으로 냅다 달렸습니다.

아파트 뒤 화단이라 사람이 없다시피 하여 코로나 19 걱정 없이 해 넘어가기 전 혼자 잠깐 놀기에 적합하였습니다.


수선화


사진을 보통 시작하면 초보가 사람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대기 부담이 되어 인물사진은 찍지 못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리게 됩니다. 찍을 꺼리가 마땅치 않음에 처음 쉽게 접근하는 것이 으레 자연사진, 즉 풀, 꽃, 나무를 찍는 것입니다. 주변을 보면 머, 대부분 예외 없다 보아도 되더라고요. 봄이면 매화로 시작해서 가을 단풍까지 산으로 들로 많이들 돌아다니곤 합니다. 어느 듯 사진에 대한 기술이 늘고, 구도나 사진을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생기기 시작하면  자연 사진을 그만두게 되는데요. 그때 우리가 찍은 사진들을 조금 폄하해서 "풀떼기"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솜나물

디지털 사진부터, 필름을 거쳐 암실까지 거치다 이제는 조금 시들 해진 사진 공부에 20년이 되어 가는 컴퓨터 사진 폴더를 뒤지니까 그 시절에 찍어둔 꽃 사진이 더러 더러 보입니다. 이리저리 쫓아다닌 기억이 좋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사진이 좋은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 보니 풀떼기 사진도 써억 나쁘지 않게 마음에 듭니다.

제비꽃


지금이야 편리하게 포털 꽃 검색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면 2, 3초 만에 즉시 꽃 이름을 알려 주어 심하다시피 편리하여졌지만 십여 년 전에는 식물도감 두세 권을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꽃 이름, 식물 이름을 알아 가는 것도 쏠찮은 재미였습니다.


폴더 창고 속에는 매화, 현호색, 진달래, 산수화, 벚꽃, 복사꽃, 개나리, 철쭉, 산나리, 에델바이스, 할미꽃, 장미, 광대나물, 별꽃, 개불알풀, 자운영, 살갈퀴, 골무꽃, 닭 이장 풀, 지황, 붓꽃, 청포, 자작나무, 연꽃 등 수많은 꽃들이 묵혀지고 있습니다. 언제 빛으로 광합성을 다시 할 날이 올까 모르겠습니다.

광대나물


화단에서 엎드리고, 포복하고, 뒹굴어 소나무 가지가 옷에 들러붙어 찔려 따갑기도 하고 지나치는 동민들이 이상하게 쳐다 보아도 잠깐 코로나 19가 주고 간 오늘의 행복과 추억은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미쳐 알지 못했던 것은 아파트 화단에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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