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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Apr 14. 2020

직장 이야기 2

팀장이 실무를 한다.

사무실일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사무실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팀장이라는 보직을 받은 지 몇 년째이다 보니 으레 어느 회사의 팀장들과 유사하게 실무에서의 말단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실무적이지 않는 일을 하게 되어 경력이 쌓일수록 문서작성, 생성을 위한 초안은 직원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팀장인 내가 하는 일이라곤 결재 마우스만 주구장창 누르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직책이 올라 갈수록 최신 컴퓨터보다 마우스 왼쪽 버턴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성된 문서를 검토하는 입장과 무에서 창조하는 입장은 매우 다르다. 바둑의 훈수가 잘 보이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직원들이 작성한 문서를 한 발 뒤에서 보면 수정, 보완해야 할 내용들이 신기하게도 보인다. 촉이다. 직원이 한 번에 보고서를 통과시키는 경우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고, 대부분 문서에 두 세줄 쭉쭉쭉 그이기 일쑤이다.




최근 함께 하던 직원 1명을 다른 사업단의 시급한 프로젝트 처리를 위해 대의적 차원에서 중단기 임대를 보냈다. 어느 회사처럼 신규로 추진하는 일이 생기면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음에 대의적 차원에서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보낸다. 어차피 내 의사와 관계없이 통보에 가까운 강제 발령이나 다름없기에 어차피 얼굴 붉힐 필요는 없음이었다. 직원이 갑자기 준 자리에 단기 계약직원으로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어 결국 한 달 만에 팀장이 실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직책이 올라 갈수록 보고서 작성 업무에서 손을 놓게 되고 한번 손은 놓게 되면 다시 보고서 작성을 한다는 것이 매우 귀찮은 일이 되어 여간해서 실무 복귀가 쉽지 않다. 이리저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나름 작성한 문서를 보니까 평소 이것저것 쓰고 싶은 할 말이 많았던지 문서가 복잡하고 길게 되어버렸다. 평소에 직원들에게 수시로 닦달하며 볶았던 말이 “문서가 왜 이리 복잡하노? 하고 싶은 말만 해, 짧게 하려니 불안하지? 할 말만 요약해서 좀 해”라는 것이었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다 말이지. 내 문서를 출력하여  “K 씨 이거 좀 봐줄래? 문서가 너무 복잡하다야”라며 보여 주었더니 K 씨는 스윽 한번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쉽게 “이거 날리고 이렇게 연결하면 됩니다"라고 하면서 시원하게 두 줄 좍 그어 버린다. 급 당황에 갑분싸.



사람들은 남을 지적하는 일은 안 알려줘도 어찌아는지 귀신같이 알게 되고, 문서에 두 줄 밑줄 긋기를 쉽게 하고, 누구나 잘한다. 그러나 나의 잘 못을 찾아내어 두 줄 긋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보는 혜안이다. 입장 바꾸어 상대편이 되어 보는 거다.


미안하다 직원님들, 코로나 19 끝나면 맛난 거 먹으러 가자. 하지만 밑줄은 두 줄에서 한 줄로 줄여서 계속 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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