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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Apr 23. 2020

코로나 19로 세번 책상을 정리한 사연

코로나 19 확산이 며칠간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는 질본의 발표에 다행스럽고 뿌듯한 기분이 든다. 머지않아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대한민국 국민이 자랑스러워서다. 국뽕도 이런 국뽕은 이때까지 없었다.

국가적으로 이제 안정권에 들어 이런 다행한 일도 없지만 개인으로 나는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두어 달간 질본과 의료 종사자 다음으로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낸 거 아닌가 싶다.




사무실일로는 코로나 정국 초기에 일본에 정박해 있는 유람선에서의 예와 같이 다수의 인원이 승선하는 배에서의 전염자 발생은 바이러스 배양실 같은 엄청난 재앙을 유발하기 때문에 남극에 파견되어 있는 아라온호에 코로나가 전파되고 이로 인해 청정지역 남극 기지까지 감염된다면 세계적 이야기 꺼리가 되기에 남극에의 추가 인력 파견 중단 등 과하다 싶을 정도의 극단적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고자 며칠간 밤낮을 잊었다.




아라온호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마자 전 국민을 놀라키게 한 대구 신천지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 사건이 뻥 터졌다. 이 사건이 나에게 웃픈 고난이 시작될 줄은 미처 예측을 하지 못했다. 코로나 검사 3번에 힘들다는 자가 격리 3번을 당하는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지난 시간이라 웃을 일이지만 그때는 직원들, 가족들 모두가 겁먹은 상태였다.




열심히 근무 중인 우리 팀에 느닷없이 총무팀에서 와서 대구 출신에다 신천지 접촉자 신고를 요구하더니 다짜고짜 마스크 쓸 것을 강요하고 공가를 부여할 테니 하던 일을 당장 중단하고 집에 가라 했다. 그때는 코로나 초기 상황이라 두려움이 컸던 탓에 50년대 공산당을 색출하는 분위기 같은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때의 당사자 기분이랄까? 겨울철엔 약간의 감기 기운을 달고 다니는 체질임에 잔기침이 있어 차마 말을 못 하고 불안해 한 직원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주섬주섬 책상 정리 후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데 두려움, 미안함, 황당함에 참담함이 밀려왔다.


1차 격리 후 평생 마스크를 죽어라 착용하지 않았고 마스크 무용론을 폈던 내가 드디어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변화를 맞이 하였다. 진실은 내가 확진자가 되는 것보다 확진자가 되어 전파자가 된다는 게 무서웠으므로.


격리 후 얼마지 않아 또다시 당황하게 한 일이 발생하였다. 올 것이 온 것이다. 회의차 세종시에 다녀온 직원 한분이 양성 확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 직원이 멘붕에 빠질 찰나도 없이 연구소는 즉시 폐쇄되었고 또다시 책상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절차에 따라 전 직원의 전수 검사가 이루어졌고 그다음 날 결과 통보 전까지 불안에 떨며 지루한 기다림이 있었고, 갑자기 목이 아픈 것 같다는 등 직원끼리는 깨톡으로 서로 불안감을 호소하기에 바빴다. 음성 판정에 관계없이 일주일 직장 폐쇄로 격리에 들어갔고 격리가 끝나자 다시 2차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길고 긴 재택근무의 시간을 보냈다. 지근에 확진자가 있고 변화된 생각은 "너도나도 서로 아무도 모른다"는 불신이 생겼고, 두려움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천되었다는 것이다.


2차 격리 후 어느 정도 사무실이 잠잠해져 갈 무렵,  근무 중 갑자기 몸이 으스스하더니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37.9도까지 체온이 상승함에  심한 몸살끼가 올라와 사실상 근무하기 어려울 상태의 몸이 되었다. 코로나로 내가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 주변의 질타, 동선 공개 등의 생각에 또 공포가 밀려왔다. 대책 본부에서 지침에 따라 당장 귀가해서 자가격리 기준을 준수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아라 한다. 소내 확진자로 놀라 선제적 대응 필요했기에 당연한 조치였을 것이다. 세 번째 근무를 중단하고 책상을 치웠다. 두 달 넘게 집, 사무실을 왕복했는데 이거 뭐지 하는 생각과 이런 시기에 감기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면역력에 눈물이 돌았다. 가족이 또다시 마스크 착용과 개별 방 사용, 식사는 방 배달을 하게 되었고, 3번째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3번째 격리기 시작되었다.  한 번이면 족 할 격리를 세 번이나 당하다니 보이지 않는 놈과 참 지겨운 인연이다.

 



코로나가 앞으로 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이 어렵지만 사업이 힘들어하는 분들, 일선 현장의 의료진들, 자원봉사자들, 대구로 달려간 간호장교, 뭐니해도 우리의 영웅이신 질본에 근무하시는 분 등 모든 국민이 한결 같이 참고 힘을 낸 덕분의 결과로 지금  웃으며 지난 악연을 돌이킬 수 있게 된 건 같다.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계속 간직할 거다.


축구스타 보다 의료 종사자들이 훨씬 값어치가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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