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필름 사용기
얼마 전부터 필름값이 하도 비싸져 신규 구입은 언감생심이어 여기저기 책상 서랍에 짱 박어 놓은 걸 사용해왔다. 문제는 식재료처럼 필름에도 제작사가 정해 놓은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
제작사 기준에 의하면 보관하고 있는 필름 모두 다 유효기간이 수년이나 경과하여 사용할 때마다 긴가 민가하는 찜찜한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 불안감이란 게 세빠지게 찍어 놧는데 이상한 형태의 결과물이 나오면 공들인 게 아까운 마음이 들까 걱정하는 것이다. 실제 정성들인 필름 한통 날리면 정신이 혼미해하지 않을 해탈한 필름 쟁이들이 있을까.
이번에 사용한 필름의 주된 점검 목적은 두 가지, 아직 재고가 많기에 반드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정이었다.
1. 오래된 필름의 사용 가능성.
2.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은 필름의 사용 가능성.
점검 대상 필름은 2006년 5월이 유효기간인 코닥 골드, 정체불명 코닥 영화용 250D, 년도 불명 아그파.
코닥 골드는 탁구장 회원님께서 몇 년 전 쓸모없다고 귀하게 쓰실 분에게 기증한 거고, 나머지 두통(two rolls)은 사정상 일시 사진을 접은 분에게 투척받은 것이었다. 어떤 방법이건 좋은 작품 내라 무료로 기증해 주신 거라 잘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법이다.
통상 필름 보관은 전용 냉장고를 판매할 만큼 저온에 보관해야 한다는데 전용 냉장고를 구입하기에 집안 공간도 비용도 부담이라 대안으로 사진사들은 집 식료품 냉장고에 보관하는 쉬운 방법을 택하긴 하나 김치통에 우선순위가 밀려 간이 크지 않으면 무스븐 집 사모님과 대부분 타협이 불가하여 이리저리 대충 방치하게 된다. 점검대상 필름들은 미안케 시리 냉장고에 입성하지 못하고 적당히 방치된 넘들이다.
세 가지 필름을 위해 수고 해준 사진기는 니콘 F6, 85mm 1.4D 렌즈에 노출은 모두 한 스톱 증가.
오래된 필름이라 예상대로 발색은 정상적이지 않아 누런 끼가 있고, 작은 사진에는 분간이 어렵지만 입자가 매우 거칠고 컸다.
냉장고 밖에서 세월에 묵히고 숙성되어 특이한 발색 나와도 거부감이 없거나 성격이 독특한 걸 선호하는 사진작가들은 현역 제품 이상으로 좋아할 듯 한 느낌이다.
확대 사진으로 사용하기에 입자가 크지만 적은 사진이 사용되는 SNS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긴한데 나중 사진집 출판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가 될 듯하다. 하지만 가성비 따져 당장 즐김용으로 손색이 없겠다는 최종 점검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