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웅웅 돌아가는 기계소리와 내 눈앞에서 쉬지 않고 지나가고 있는 비닐 원단에서 혹여나 발견될 불량을 체크하기 위해 온 신경이 한 곳으로 몰려있다. 손은 불량이 발견될 시 눌러야 하는 버튼 근처에서 살짝 떨리듯 주변을 맴돌고 있다. 다리는 재빠른 움직임을 위해 종아리에 잔뜩 긴장을 주고 있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고 있으면 어느덧 내 머릿속에서는 길게는 몇십 년 전, 짧게는 며칠 전 일들이 어렴풋한 기억들의 조각들로 모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단어들과 문장들로 어울려져 영사기처럼 머릿속 어딘가에서부터 전두엽 근처까지 돌아가는 것 같다. 딱 업무사고가 발생하기 좋은 상황이다. 한때는 머릿속의 활동과 긴장이 손과 발보다 심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이다.
끝없이 밀려드는 이 기억의 조각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메모 그래 메모를 해보자 잠깐이라도 메모할 시간은 있다. 종이에 하기도 하고 주로 핸드폰 녹음 기능을 이용한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단어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문장들로 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순서나 구성 이런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그냥 생각나는 일만 써보기로 한다.
첫 소개글에 작가가 되고 싶고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싶고 아내와 함께하는 일상을 쓰고 싶다고 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에 집중하고 지금 떠오르는 느낌과 감정을 써보기로 한다. 혹시 아는가 이것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여러 글쓰기 책들 속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 작은 책이 되어 있을지도...
코로나19로 인하여 나의 직업은 완전히 없어졌다가 완전히 다른 일로 바뀌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다른 일들도 닥치는 대로 했지만 4대 보험이 가입된 직장은 2년 만에 바뀌었다. 여행업에서 제조업으로, 사무실에서 공장으로 바뀌었다. 북적북적한 지하철을 타고 서울 한가운데로 출근하다가, 라디오를 들으며 자가로 운전을 하여 경기도 파주 어느 곳으로 간다. 답답하게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하고 와이셔츠를 입고 구두를 신다가 작업복을 입고 작업화를 신는다. 와이프에게 파버 카스텔(Faber castell)이니, 라미(Lamy)니 이야기하다가 지금은 톨루엔이니 원단이니 하는 이야기를 한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예전 일을 잊지 못하는 머릿속 어느 부분과 마음속 어느 부분이 있다. 지금 하는 공장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장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옛 기억들이 떠오르며, 좋은 시너지를 이루게 하기도 하고, 더 갑갑한 감정을 갖게 하기도 한다.
현실과 과거가 충돌하는 것이다. 업무적인 과도기, 감정적인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더 피곤해지고 힘이 더 들게 된다. 맥이 탁 풀리는 느낌도 든다. 이런 생각은 아무 의미 없고, 나를 더 괴롭게 한다고 그러지 말자고, 얼른 이 일에 완전히 녹아들자고 다짐하지만 이 마음과 머릿속 어느 부분은 도저히 나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파트 대출금과 이자비용, 기본적인 생활비용, 금융비용 등 나는 지금 돈을 벌어야 한다. 무조건 벌어야 한다. 감사하게도 나이 든 나를, 아무런 기술도 없는 나를, 필요한 지식도 없는 나를 이곳에서 일하게 해 줬건만 왜 나는 이렇게 과도기를 겪고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름 정리하며 나의 글을 이어가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