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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Oct 21. 2022

#1 뉴스에 보인 낯익은 얼굴

소설연재

뚜루루루루


메리는 9월 중순의 어느 금요일 새벽 1시에 전화가 울려서 잠에서 깼다눈을 여전히 감은 채로 손을 더듬거려 침대 위의 휴대폰을 찾았다반쯤 찡그린 눈으로 본 전화 화면에 찍힌 이름은 그녀의 언니인 루시였다몇 달 만의 연락에 흠칫 놀랐다옆에서 자고 있는 그녀의 남자친구 애런은 계속 울리는 전화 소리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새벽에 전화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메리지금 집으로 가는 중인데 엠마 좀 부탁해지금 너무 급해서 그런데 잠시만 맡아줘.”


거친 루시의 숨소리가 전화기를 통해서 흘러나왔고후두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창 밖을 바라보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아니지금 이 비오는 날에 무슨


뚜뚜뚜.

전화는 갑자기 끊겼고심상치 않음을 느낀 메리는 서둘러 침대 옆 의자에 걸쳐 있는 로브를 집어 대충 걸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창문에 비친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일렁였다메리는 일단 티비를 켰다. 뉴스 속보가 마침 나오던 참이었다. 눈길이 가는 제목에 소파에 살짝 걸쳐 앉아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제 밤 검은색 옷을 입은 네 다섯명의 무리가 대거 난동을 부려 건물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눈이 회색인 걸로..."


쾅쾅쾅.


세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놀라 화들짝 깨서 황급히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비에 잔뜩 젖은 루시가 서 있었다. 그녀의 품 안에는 아직 돌이 안 지난 갓난 아기인 엠마가 새끈새끈 자고 있었다. 루시는 메리에게 자신의 아이와 큰 가방을 건넸다.


언니 이게 무슨 일이야들어와 봐 일단!”


루시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안 하고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쳐다보더니 아기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그리고 젖은 손가락 끝으로 아이의 발을 어루만졌다루시의 눈동자에서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이 흘러내렸다.


나중에나중에 알려줄게연락 할게.”


타고 온 차 안에 앉아있는 그녀의 남편 에드워드가 메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부부는 언제 다시 돌아온다는 말도 없이 차를 타고 메리의 집을 급히 떠났다메리는 깊게 잠들어 있는 품 속의 엠마를 데리고 다시 침대로 올라갔다.


너희 엄마 아빠는 뭐가 항상 그렇게 바쁜 걸까 몰라.”


항상 그 부부는 바쁘고 바빴다엠마를 이렇게 보는 것도 두 번째다사실 루시가 임신한 것도 이 아이가 태어날 때 알았고엠마도 태어날 때 처음 본 게 다다그 후로는 루시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무소식 희소식이 겠거니 생각하며 살았다아이를 보살펴본 적 없는 메리는 일단 아기를 침대에 뉘였다.


자고 있어서 다행이야.”


메리도 그 옆에 살며시 누웠다그렇게 다시 깜박 잠이 들었다.


으아아아앙.


아기 우는 소리에 메리는 잠에서 깼다로브를 입을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벌써 아침이었다애런은 일을 갔는지 침대에 없었다배가 고파 우는 엠마의 울음에 아랫층으로 내려가 루시가 준 가방을 뒤적거렸다분유와 젖병을 들고 어떻게 해야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인터넷의 도움을 받았다그녀는 영상을 보며 하나씩 따라하면서 분유를 태웠다분유 한 스푼 그리고 따뜻한 물을 부어 흔들어 잠깐 맛을 봤다따듯한 온기에 메리도 차 한잔이 고팠다아이의 입에 젖병을 물려주자 금새 울음을 그쳤다꿀떡꿀떡 우유가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메리는 티비를 켰다.


긴급 속보입니다. 생활고를 겪던 한 부부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에게 쫓기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낭떠러지로 떨어져 둘 다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경찰의 과잉진압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는 점점 그녀의 귀에서 옅어졌고그녀는 화면에 나온 자동차에 시선이 꽂혔다낯 익은 차였다그리고 사고 난 자동차 영상 위로 부부의 얼굴이 나왔다그녀가 집에서 찍어준 밝게 웃고 있는 언니의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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